제3·5대 국회의원, 국방부·내무부 장관, 호는 석계
| 생몰 | 1907 ~ 1988 |
| 시대 | 대한민국 |
| 본관 | 연주 현씨 |
현석호(1907~1988)는 경상북도 예천에서 태어난 관료·정치인으로 호는 석계(石溪), 천주교 세례명은 요셉이며 본관은 연주입니다.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33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 조선총독부 관료로 전라남도 화순군수, 황해도 산업과장, 충청남도 광업부장 등을 지냈습니다.
광복 뒤에는 미군정 중앙경제위원회 기획관을 지내고 남선전기 부사장, 경성전기 전무로 일했습니다. 제3대(1954, 자유당)와 제5대(1960,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냈고 민주당 신파의 핵심 인물로 중앙당 조직부장이 되었습니다. 1960년 8월 제9대 국방부 장관, 같은 해 10월 제23대 내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1961년 1월부터 제11대 국방부 장관으로 다시 일하다 5·16 군사정변을 맞았습니다.
일제강점기 고급 관료로 일한 전력에 관해서는 회고록에 광복 직후 충남지사에게 사표를 내며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이므로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답했다고 전합니다. 한편 그는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분야와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관료 부문에 포함되었습니다. 만년에는 1967년 가톨릭교리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1988년 12월 2일 서울에서 별세했습니다.
현석호는 1933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뒤 전남 화순군수 등 지방 관료로 일했습니다. 이 경력이 뒤에 친일 관련 명단에 오르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회고록에 따르면 광복 직후 그는 충남지사에게 사표를 내며 스스로를 일제에 협력한 고급 관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08년 이를 대표적인 친일 전력 반성 사례 중 하나로 언급했습니다.
민주당 신파로서 제5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장면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위키백과의 장관 재임 날짜는 본문 설명과 일부 맞지 않아 연도만 적었습니다. 족보월드는 명단 수록 사실만 밝히고 친일 태그는 달지 않았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960~1961년 국방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냈습니다.
총독부 관료 전력으로 친일파 708인 명단과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었고, 본인이 회고록에서 이를 반성했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