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목육종학자, 제2대 농촌진흥청장, 리기테다소나무·은사시나무 개발

| 생몰 | 1911 ~ 1986 |
| 시대 | 대한민국 |
| 본관 | 연주 현씨 |
현신규(玄信圭, 1911~1986)는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산림학자로 본관은 연주입니다. 1936년 규슈제국대학 임학과를 졸업하고 1949년 같은 대학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인으로는 처음 임업 분야 박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광복 뒤 수원농림전문학교 교수와 미군정청 임업시험장장을 지냈고, 1960년 한국임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1951년 미국 산림유전연구소에서 연구한 뒤 서울대 농과대학에 임목육종학연구소를 세웠습니다. 1955년부터 인공교배 시험으로 해충과 추위에 강하고 생장이 좋은 리기테다소나무를 개발했고, 한국 환경에 맞는 이탈리아포플러(I-214, I-476)를 찾아 보급했으며, 은백양과 수원사시나무를 교배해 경사지에서 잘 자라는 은사시나무를 만들었습니다. 약재용 백양수피를 얻기 위한 황철나무도 보급했습니다.
1963년 7월부터 1965년 8월까지 제2대 농촌진흥청장을 지내고 이후 서울대 교수로 일했습니다. 1959년 학술원 학술공로상, 1964년 3·1문화상, 1978년 5·16민족상, 1982년 국민훈장 무궁화대훈장을 받았습니다. 그의 연구는 1970년대 치산녹화 10년 계획의 조림 사업으로 이어졌고, 위키백과는 FAO가 한국을 2차대전 후 산림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로 평가했다고 적습니다.
현신규는 일본에서 임학을 공부한 뒤 광복 직후 한국의 임업 연구를 이끌었습니다. 1960년 한국임학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을 지냈고 학문 공동체의 기틀을 놓았습니다.
리기다소나무와 테다소나무를 교배한 리기테다소나무는 위키백과에 따르면 미국 상원에서도 한국의 기적의 소나무로 보고되었습니다. 은사시나무는 경사지 조림에 쓰였습니다.
농촌진흥청장을 지내며 연구와 행정을 이었고, 3·1문화상과 국민훈장 무궁화대훈장을 받았습니다. 귀국 시점이 문서에서 1951년과 1952년으로 갈리는 점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리기테다소나무와 은사시나무를 개발한 임목육종학자이자 제2대 농촌진흥청장입니다.
위키백과는 1949년 규슈제국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임업 분야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