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전씨의 시조, 고려 충숙왕 때 밀직부사·판도판서·상호군을 지내고 관성군에 봉해졌다고 전함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고려 충숙왕 때 |
| 본관 | 옥천 전씨 |
전유(全侑)는 옥천 전씨의 시조로 전합니다. 고려 충숙왕 때 봉익대부·밀직부사·판도판서·상호군 등을 지냈고, 옥천의 옛 이름인 관성을 딴 관성군(管城君)에 봉해졌습니다. 디지털금산문화대전과 디지털세종시문화대전은 도시조 전섭의 27세손으로 적고, 세계일보 성씨 연재는 전이갑의 12대손이라고 합니다. 충청타임즈는 그가 고려 때 옥천군수로 부임해 터를 잡았다고 소개합니다.
한편 나무위키는 문중에서 고려 때 동정(同正)을 지낸 전학준을 시조로, 전유를 중시조로 모신다고 적고 있어 시조를 누구로 보는지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관성은 옥천의 옛 지명입니다. 전유가 관성군에 봉해지면서 후손들이 옥천을 본관으로 삼았다고 하며, 그래서 관성 전씨·관산 전씨라고도 부릅니다.
후손들은 전유의 세 아들을 파조로 전서공파·봉상대부공파·판서공파의 세 파로 갈라졌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옥천 전씨를 보세요.
화상과 찬문이 1933년에 발견되어 옥천 목담서원에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들 전숙(후관성군)이 판서공파의 파조로 전해지며, 후손으로 전팽령·전식·전희철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