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주교 평신도 지도자, 『상재상서』의 저자, 세례명 바오로, 1984년 성인

| 생몰 | 1795 ~ 183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나주 정씨 |
성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1795~1839)는 조선의 천주교 순교자이자 평신도 신학자, 교회 지도자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정약종의 아들이며 정약용의 조카입니다. 형 정철상이 1801년 아버지와 함께 순교한 뒤 재산이 몰수되어 어머니 유조이(유소사, 체칠리아), 누이 정정혜와 함께 숙부 정약용의 고향 마재에서 어렵게 살았습니다. 친척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는 이 가족을 반기지 않았다고 위키백과가 전합니다.
어머니는 구전으로 기도문을 가르쳐 자녀들이 신앙을 잃지 않도록 격려했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인 교리 교육을 받지 못한 정하상은 함경도 무산에 귀양 가 있던 조동섬을 찾아가 천주교와 학문을 배웠습니다. 신유박해로 주문모 신부가 순교해 사제가 없는 상태가 되자 그는 사실상 조선 교회의 지도자 역할을 맡았고, 양반이면서도 역관의 종으로 위장해 북경에 가서 사제 파견을 청하는 겸손을 실천했습니다.
1824년에는 역관 유진길과 함께 북경에 다녀왔고, 1825년 조선 독립 교구 설치를 교황청에 청원했습니다. 이에 따라 1831년 조선교구가 설정되어 파리외방전교회가 맡게 되었습니다. 1836년 모방 신부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정하상은 '중심이 되는 인도자'로 존중받았고 모방 신부의 숙소도 그의 집이었습니다. 모방 신부가 김대건·최양업·최방제를 신학생으로 선발할 때에도 그가 도왔고, 앵베르 주교는 그에게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9월 22일 참수되어 순교했습니다. 어머니 유조이와 누이 정정혜도 같은 해에 순교해 정약종 가족은 모두 신앙을 지키다 죽은 순교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체포 직전 쓴 천주교 변증서 『상재상서』는 조선의 천주교 박해가 부당함을 주장한 글로, 1890년 홍콩에서 간행되었습니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인으로 시성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 정약종과 형 정철상이 순교하고 재산이 몰수되었습니다. 정하상은 어머니, 누이와 마재에 의지해 살았습니다.
1824년 유진길과 함께 북경에 갔고 1825년 독립 교구 설치를 교황청에 청원했습니다. 이 노력이 1831년 조선교구 설정으로 이어졌다고 위키백과는 설명합니다.
1836년 입국한 모방 신부는 정하상의 집에서 지냈고, 김대건·최양업·최방제를 신학생으로 뽑는 일을 그가 도왔습니다. 이들은 훗날 한국 최초의 사제 후보로 마카오에서 공부하게 됩니다.
체포 직전에 쓴 변증서로, 천주교가 사학이 아니며 박해가 부당함을 밝히려는 글입니다. 유교 사회의 비판에 맞서 교리를 설명하는 호교론의 성격을 가집니다.
순교 장소와 묘소의 구체적 위치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서소문 순교성지 등에서 기려진다고 합니다.
아버지 정약종, 형 정철상, 어머니 유조이(체칠리아), 누이 정정혜(엘리사벳)가 모두 순교했습니다.
정약종의 아들이자 정약용의 조카로, 조선 천주교회의 평신도 지도자이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인입니다.
체포 직전에 쓴 천주교 변증서로, 박해가 부당함을 주장한 글입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해 시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