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도회 회장으로 『쥬교요지』를 쓴 천주교 순교자,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2014년 시복

| 생몰 | 1760 ~ 1801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나주 정씨 |
정약종(丁若鍾, 1760~1801)은 조선 정조 때의 학자이며 천주교 순교자입니다. 본관은 나주,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이고 진주목사 정재원의 셋째 아들로 경기도 광주(지금의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위로 정약현·정약전이 있고 동생이 정약용입니다. 젊어서는 성호 이익의 학문을 공부했고 한때 도교를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나주정씨대종회는 그가 1786년 형 정약전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정리하며, 오랫동안 방황하던 자신의 모습이 성 아우구스티노와 닮았다고 생각해 그 세례명을 택했다고 전합니다. 1787년 반회 사건 이후 가문이 천주교를 멀리하자 처자를 데리고 한강 건너 양근 분원으로 이주해 하층민들을 집으로 불러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신분제를 넘어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신앙을 실천한 점이 특징으로 꼽힙니다.
1795년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맞아들이는 데 이승훈과 함께했고, 1799년 초 주문모가 평신도 단체 명도회를 세우자 초대 회장이 되었습니다. 그가 쓴 『쥬교요지』 상·하권은 한문을 모르는 신자와 부녀자도 이해할 수 있도록 순 한글로 쓴 최초의 교리서로, 주문모는 이 책을 읽고 '꼴과 땔나무보다 더 요긴하다'고 했다고 전합니다. 그는 다시 『성교전서』를 쓰던 중 박해를 맞았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성상과 교리서, 서한이 든 책롱을 옮기다 발각되었고, 2월 11일(음력) 체포되어 의금부에서 여러 차례 신문받았으나 굴하지 않았습니다. 1801년 2월 26일(음력) 서소문 밖에서 참수되어 순교했습니다. 형장으로 가며 군중에게 하늘의 주를 흠숭하라고 말했고, 땅을 보며 죽는 것보다 하늘을 보며 죽겠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대종회 자료에 전합니다. 아들 정철상도 참수되어 순교했고, 정약종은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때 시복되었습니다.
1786년 세례를 받았지만 1787년 반회 사건과 1791년 진산 사건으로 가문이 천주교를 멀리하자, 정약종은 제사 문제로 갈등하다 마재를 떠나 양근 분원으로 이주했습니다. 형 정약전과 동생 정약용은 이 무렵 천주교와 거리를 두었습니다.
주문모 신부가 만든 명도회의 초대 회장으로 신자 조직을 이끌었습니다. 『쥬교요지』는 천주의 존재 증명, 불교·도교·민간신앙 비판, 창조와 구속 등을 다룬 상·하편 43장 규모의 교리서로 대종회가 정리합니다.
박해가 시작되자 머슴이 책 농짝을 황사영의 집으로 옮기다 발각되었고, 그 안에서 서적과 성물, 서한이 나와 남인에 대한 공세의 증거가 되었다고 대종회는 설명합니다.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아래 이가환·권철신 등도 큰 화를 입었습니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에서 정약종이 복자 반열에 올랐다고 위키백과가 전합니다. 아들 정철상도 신유박해 때 참수되어 순교했습니다. 아들 정하상은 이미 1984년 성인이 되었습니다.
순교 장소는 서소문 밖 형장이며, 현재 이 일대가 서소문 순교성지입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정철상(가롤로, 1782~1801), 정하상(바오로, 1795~1839), 딸 정정혜(엘리사벳, 1797~1839)가 있으며 부인 유조이(체칠리아)와 함께 모두 순교했습니다. 정하상은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정약용의 셋째 형으로 명도회 초대 회장을 지내고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 인물입니다.
한문을 모르는 신자도 읽도록 순 한글로 쓴 최초의 천주교 교리서입니다.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