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둘째 아들, 『농가월령가』의 지은이로 알려진 문인, 호는 운포
| 생몰 | 1786 ~ 1855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나주 정씨 |
정학유(丁學游, 1786~1855)는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나주, 호는 운포(耘逋)입니다. 정약용의 둘째 아들이며 형은 정학연입니다. 어머니는 풍산 홍씨이고, 할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입니다. 큰아버지는 정약현·정약전·정약종이었으며, 이들이 신유박해로 죽거나 유배되던 시기에 그의 아버지도 강진에 유배되어 있었습니다.
정학유의 이름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한글로 농가의 열두 달 일과 풍속을 읊은 『농가월령가』 때문입니다. 위키백과는 1816년(순조 16) 농가에서 매년 해야 할 일과 풍속을 한글로 읊은 이 작품을 그가 지었다고 소개하며, 모두 518구의 국한문 혼용으로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농사 때를 강조하고 농구 관리와 거름의 중요성, 작물·과목·양잠·양축·양봉·산채·약초·김장·누룩·방적 등 다양한 농사 내용을 담았다고 합니다.
이 노래에는 세배, 널뛰기, 윷놀이, 달맞이, 더위팔기, 성묘, 천렵, 천신 같은 민속 행사도 폭넓게 들어 있어 민속학 연구에도 도움이 됩니다. 농부들이 철마다 음률에 맞추어 흥겹게 부를 수 있도록 지어졌다는 점에서 농업 기술 보급과 우리말 노래의 시도라는 의미가 큽니다. 다만 『농가월령가』의 지은이를 두고는 다른 견해도 제기되어 왔으므로, 정학유 작으로 보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라는 정도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나주정씨대종회의 문원록에는 『농가월영가』(農家月咏歌)가 호 운포 정학유(1786~1855)의 작품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아들로는 정대무(참봉, 현감), 정대번, 정대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약용의 아들이며 형은 정학연입니다. 큰아버지 정약전·정약종은 신유박해와 연루되었고, 아버지 정약용은 강진에 유배되었습니다.
정월부터 섣달까지 농가의 일과 풍속을 월별로 읊은 가사입니다. 작물과 과목, 양잠, 양봉, 김장, 방적 같은 생활 기술에서 세배·널뛰기·윷놀이 같은 풍속까지 폭이 넓습니다.
정학유가 지었다는 것이 위키백과와 대종회 문원록의 설명이지만, 학계에서는 지은이에 관한 다른 견해도 제기되어 왔습니다. 확정된 사실로 단정하기보다 널리 알려진 견해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자료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정대무(1824~, 참봉·현감), 정대번(1833~), 정대초(1835~1904)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약용의 둘째 아들로 『농가월령가』의 지은이로 알려진 나주 정씨의 문인입니다.
농가의 열두 달 일과 풍속을 한글로 읊은 월령체 가사로, 518구 국한문 혼용으로 소개됩니다.
정학유 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다른 견해도 있어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