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성 수복에 공을 세운 고려 말 문신, 용성군
| 생몰 | 1307 ~ 1380 |
| 시대 | 고려 말 |
| 본관 | 한양 조씨 |
조돈(趙暾, 1307~1380)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양, 초명은 조우(趙祐)입니다. 쌍성총관 조휘의 손자이자 2대 총관 조양기의 아들로, 쌍성총관부를 세습하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고려로 돌아와 가문의 방향을 바꾼 인물입니다. 어머니는 박씨이고, 부인은 평리 이홍복의 딸입니다.
대대로 용진에 살던 그는 젊어서 고려에 귀부해 충숙왕을 섬겼습니다. 당시 고려의 아전과 백성이 자주 여진 땅으로 도망하자 여러 차례 해양(길주)에 가서 도망한 백성을 데려왔고, 그 공으로 감문위낭장을 거쳐 좌우위호군이 되었습니다. 충숙왕이 세상을 떠난 뒤 용진에 물러나 있다가,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이 원나라에 빼앗긴 쌍성을 되찾으려 하자 동북면병마사 유인우의 고려군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쌍성총관이던 조카 조소생에게 붙잡혀 있다가 아우 조천주와 함께 빠져나와 네 아들을 데리고 하룻밤에 200리를 달려 고려군 진영에 이르렀고, 맏아들 조인벽을 보내 쌍성 사람들을 달래도록 했습니다. 이 일로 쌍성은 99년 만에 고려 땅이 되었습니다.
그 공으로 예빈경과 태복경에 임명되었고, 1359년 홍건적이 쳐들어오자 안우 휘하의 지병마사로 싸웠습니다. 1361년 공부상서로서 안동으로 피란한 공민왕의 행궁을 지켰고, 홍건적 격퇴의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습니다. 해주목사·예의판서·검교밀직부사를 지낸 뒤 1372년 물러났고, 우왕 때 용성군(龍城君)에 봉해졌습니다. 1379년 고향으로 돌아가며 따라가려는 막내아들 조인옥에게 왕실을 위해 힘쓰라고 당부했다고 『고려사』 열전은 전합니다. 이듬해 일흔세 살로 용진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전기는 『고려사』 열전에 실려 있습니다. 아들 조인벽·조인경·조인규·조인옥 4형제는 모두 높은 벼슬에 올라 한양 조씨 번성의 바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