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휘 趙暉

쌍성총관부 초대 총관, 시조 조지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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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273
시대고려 후기
본관한양 조씨

생애 약력

조휘(趙暉, ?~1273)는 고려 후기 동북면의 토착 세력으로, 1258년 몽골에 투항해 쌍성총관부의 초대 총관이 된 인물입니다. 본관은 한양으로, 한양 조씨 시조 첨의중서사 조지수(趙之壽)의 아들로 족보에 올라 있습니다. 집안은 대대로 용진현(龍津縣, 지금의 함경남도 문천·원산 일대)에 살아왔습니다.

1258년(고종 45) 몽골군이 화주(和州) 일대에 쳐들어오자, 조휘는 정주 사람 탁청(卓靑)과 함께 등주·문주 등 여러 성의 사람들을 부추겨 몽골에 투항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동북면병마사 신집평이 섬으로 들어가 수비가 허술해진 틈을 타 신집평과 등주부사 박인기, 화주부사 김선보, 경별초 군사들을 죽이고 화주 이북의 땅을 몽골에 바쳤습니다. 몽골은 이곳에 쌍성총관부를 두고 조휘를 총관, 탁청을 천호로 삼았으며, 천호 자리도 탁청의 후손이 대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이듬해에는 몽골군을 이끌고 한계성을 치려다 방호별감 안홍민의 야별초에 격퇴되었고, 고려 왕이 몽골에 보낸 사신의 예물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고려사』는 그를 반역 열전에 실었습니다.

조휘가 몽골에 투항한 뒤 쌍성총관 자리는 아들 조양기, 손자 조림, 증손 조소생까지 4대 99년 동안 세습되었고, 1356년 공민왕의 쌍성 수복으로 끝났습니다. 조양기의 딸, 곧 조휘의 손녀는 이성계의 할아버지 도조 이춘의 후처가 되어, 한양 조씨와 조선 왕실이 이어지는 첫 고리가 되었습니다. 『태조실록』 총서에도 도조가 ‘쌍성총관의 딸 조씨’를 아내로 맞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조휘의 손자 조돈이 고려로 돌아와 쌍성 수복을 도우면서 가문은 새 길을 걷게 됩니다. 조휘는 한양 조씨가 동북면의 유력 가문으로 자리 잡은 출발점이자, 원 간섭기 국경 지대의 복잡한 사정을 보여 주는 인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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