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성 수복과 왜구 토벌에 공을 세운 무신, 용원부원군
| 생몰 | 1330 ~ 1393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한양 조씨 |
조인벽(趙仁璧, 1330~1393)은 고려 말의 무신으로 본관은 한양이며, 쌍성총관 조휘의 증손이자 조돈의 맏아들입니다. 시호는 양렬(襄烈)입니다.
1356년(공민왕 5) 아버지와 함께 동북면병마사 유인우를 도와 쌍성 사람들을 달래는 일을 맡았는데, 쌍성 사람들이 “조 별장이 왔으니 우리는 살았다”며 잇따라 항복했다고 『고려사』는 전합니다. 이 공으로 호군이 되었고, 1363년 김용의 난을 토벌한 공으로 수복경성 2등공신에 올랐습니다. 1372년 가주에서 일어난 난을 토벌하고, 같은 해 왜구가 함주와 북청주를 노략질하자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습격해 크게 이겨 봉익대부가 되었습니다.
우왕 때에는 밀직부사로서 충혜왕의 아들을 자칭한 중 석기를 잡았고, 동북면원수·강릉도원수·강릉도상원수로 여러 차례 왜구를 물리쳤습니다. 1377년에는 신주·옹진·문화 등지에 쳐들어온 왜구를 나세·심덕부와 함께 공격했으나 적세가 강해 물러나기도 했고, 1382년에는 강릉도에서 왜구 30여 명의 목을 베었습니다. 1378년에는 화포를 쏘며 수군을 훈련시켰고, 1383년 문하찬성사로 동북면도체찰사가 되어 변방을 지켰으며, 1385년 사도도지휘사와 교주도원수를 지냈습니다. 1388년 위화도 회군에 참여해 삼사좌사가 되었고, 1389년 판의덕부사에 올랐으며, 1390년 회군공신 2등에 책록되었습니다.
그는 이성계의 아버지 환조 이자춘의 딸 정화공주(貞和公主)와 혼인해 태조의 매부가 되었고, 조선 개국 뒤 용원부원군(龍源府院君)에 봉해졌습니다. 첫 부인에게서 난 맏아들 조온은 양절공파, 정화공주가 낳은 아들 조연은 양경공파의 파조가 되었고, 조후·조사·조부 등 다른 아들들도 높은 벼슬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조인벽의 후손은 한양 조씨에서 가장 큰 갈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