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재기이』를 남긴 조선 후기 여항시인
| 생몰 | 1762 ~ 184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한양 조씨 |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은 조선 후기의 여항시인으로 본관은 한양입니다. 초명은 경유(景濰), 자는 지원(芝園)·자익(子翼), 호는 추재(秋齋)·경원(經畹)입니다. 아버지는 한성부좌윤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추증된 조원문이며, 여항시인 조경렴의 아우이고, 조선 말기의 화원 조중묵이 그의 손자입니다. 신분은 역과 중인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어에 능하고 글씨도 잘 썼으며, 동료들은 그에게 풍모·시문·과문·의학·바둑·글씨·기억력·말솜씨·덕행·장수의 열 가지 뛰어난 점이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신분의 제약 때문에 1844년(헌종 10) 여든세 살에야 진사시에 합격했습니다. 천수경이 이끈 송석원시사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며 조희룡·장혼·박윤묵 등 여항시인과 사귀었고, 김정희·김명희, 풍양 조씨 세도의 중심 인물인 조인영·조만영 등 사대부 문인과도 가까웠습니다. 벼슬에 나간 이력이 없는 그의 삶은 여행으로 특징지어집니다. 1789년 이성원을 따라 처음 중국에 간 뒤 여섯 차례 연경에 다녀오며 오숭량·유희해 등 중국 문사들과 교유했고, 국내 각지를 두루 다니며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그의 시는 앞 시기에는 생활 주변과 자연을 노래한 작품이 많고, 뒤로 갈수록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과 장편시가 늘어납니다. 홍경래의 난을 그린 「서구도올」, 관북 지방 민중의 비참한 삶을 그린 「북행백절」이 대표적이며, 「석고가」 등 장편도 널리 읽혔습니다. 도시 하층민의 생생한 모습을 짧은 산문과 칠언절구로 엮은 「추재기이(秋齋紀異)」는 조선 후기 이야기꾼 전기수에 관한 중요한 자료로 꼽힙니다. 김정희는 그의 시를 두보에 견주었다고 합니다. 문집으로 『추재집』 8권 4책이 전하며, 『호산외기』와 『이향견문록』에도 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