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사초 열람을 거부한 청백리, 한양 조씨 최초 족보 편찬자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한양 조씨 |
조원기(趙元紀)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한양, 자는 이지(理之), 호는 돈후재(敦厚齋), 시호는 문절(文節)입니다. 개국공신 조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참판 조육, 아버지는 정랑 조충손이며, 어머니는 남상명의 딸입니다. 사림의 영수 조광조의 숙부입니다.
아홉 살 때 장기 놀이에만 빠져 있다가 어머니의 한탄을 듣고 뉘우쳐 학문에 힘썼다고 합니다. 1483년(성종 14) 사마시를 거쳐 1496년(연산군 2) 식년 문과에 급제했고, 전적·정언·수찬 등을 지냈습니다. 사관으로 있을 때 임금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볼 수 없게 되어 있는 사초를 연산군이 내라고 명하자 이에 따르지 않아 파직되었습니다. 1504년 갑자사화 때에는 대간 시절의 간언이 문제가 되어 매를 맞고 유배되었습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사성이 되었고, 경원부사로 나가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방을 튼튼히 한 공으로 대사간에 올랐습니다. 좌부승지로 있을 때 청백리에 뽑혔고, 1515년 명나라에 다녀온 뒤 대사헌·이조참판·형조판서를 거쳐 좌참찬을 지냈습니다. 1523년에는 진위사로 다시 명나라에 다녀왔고, 1526년 물러나기를 청했으나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의 행적은 『연산군일기』와 『중종실록』 등에 전합니다. 조카 조광조의 명성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깊이 걱정해 편지를 보내 경계했다고 합니다.
그는 안평대군 사건에 연루되었던 아버지 조충손이 만들다가 갑자사화의 와중에 잃어버린 보첩의 뜻을 이어, 어려서 들은 바와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족보 초본을 엮었습니다. 이를 함창군수로 가는 족질 조세정이 다듬어 1524년 함창에서 목판으로 펴냈는데, 이것이 한양 조씨 최초의 족보인 갑신보(가정보)입니다. 저서로 『조문절공유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