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서화협회 창립에 참여한 화가

| 생몰 | 1886 ~ 1965 |
| 시대 | 근현대 |
| 본관 | 제주 고씨 |
고희동(高羲東, 1886~1965)은 한성에서 태어난 화가로 본관은 제주이며, 호는 춘곡(春谷)입니다.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궁중 관청에서 일했으며, 안중식과 조석진에게서 전통 서화를 배웠습니다. 을사늑약(1905) 이후 서양 미술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1915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해 한국인으로서 처음 서양화를 전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같은 해 그린 《부채를 든 자화상》(1915)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918년에는 근대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를 창립하는 데 참여했으나 1939년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습니다.
광복 뒤에는 문화 단체를 이끌고 국전 초기 심사를 맡았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냈고 1960년 민주당 소속 참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유화는 일시적이었고 점차 수묵 산수로 돌아가 서양식 음영을 더한 화풍을 보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말 전시기에 관제 전시에 출품한 일은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됩니다. 정치인 고건도 같은 제주 고씨입니다.
안중식·조석진에게 전통 서화를 배운 고희동은 을사늑약 이후 서양화로 눈을 돌려 일본에 유학했습니다. 한국인 서양화 1세대의 출발점입니다.
1915년 작 《부채를 든 자화상》은 초기 한국 서양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습니다. 1918년 서화협회 창립에 참여해 근대 미술 단체의 기틀을 놓았습니다.
해방 뒤 예술원 회장과 참의원을 지냈습니다. 말년의 수묵 산수에는 서양식 음영이 더해졌습니다. 전시기의 관제 전시 출품은 비판을 받았으며, 그의 공적과 과오는 함께 논의됩니다. 같은 제주 고씨의 고황경도 같은 시기 여러 영역에서 활동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915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해 한국인 최초로 서양화를 전공했기 때문입니다.
《부채를 든 자화상》(1915)이며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