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고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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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고씨(濟州 高氏) — 탐라 개국신화의 고을나를 시조로 한다고 전하는, 고씨의 대표적 본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 약 310,542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돌담과 숲에 둘러싸인 제주 삼성혈과 삼성전을 그린 수묵담채화
AI로 그린 상상도 —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돌담과 숲에 둘러싸인 제주 삼성혈과 삼성전을 그린 수묵담채화

제주 고씨란

탐라 개국신화의 고을나를 시조로 한다고 전하는, 고씨의 대표적 본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제주 고씨 인구는 약 310,542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고씨라도 본관(제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제주 고씨의 뿌리와 역사

제주 고씨(濟州 高氏)는 2015년 인구조사에서 약 31만 명으로, 고씨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표 본관입니다. 탐라 개국 신화의 세 신인 가운데 한 사람인 고을나(高乙那)를 시조로 모시며, 고려와 조선 초까지 탐라의 성주(星主) 지위를 대대로 이은 집안으로 전합니다.

시조와 본관의 유래

『고려사』에 인용된 옛 기록에 따르면, 아주 먼 옛날 한라산 북쪽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세 신인이 솟아났습니다. 이들이 양을나(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이며,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아내로 맞아 농사와 목축을 시작하고 탐라를 열었다고 합니다. 이 세 구멍이 오늘날 제주시의 삼성혈(三姓穴)이고, 고을나는 제주 고씨의 시조로 모셔져 왔습니다.

고을나의 15대손 고후(高厚)·고청(高淸)·고계(高季) 세 형제가 바다를 건너 탐진(지금의 강진)에 이르러 조회했습니다. 이때 맏이는 성주(星主), 둘째는 왕자(王子), 막내는 도내(徒內)라는 칭호를 받았고, 탐진에 배를 대었다 하여 '탐라'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전합니다. 이때 조회한 나라가 신라였는지 고려였는지는 기록에 따라 다릅니다.

중시조로 모시는 고말로(高末老)는 고려 태조 때인 938년 고려에 내조하여 성주·왕자의 작위를 받고 탐라의 자치를 인정받았다고 전합니다. 이후 후손들이 조선 초까지 성주의 칭호를 이으며 탐라를 다스렸습니다. 본관 제주는 이 탐라의 땅으로, 고려 때 탐라군을 거쳐 조선 태종 때 제주목이 되었습니다.

가문의 흐름

고려 문종 때 고유(高維)가 탐라 고씨로서 처음 중앙 관직에 올라 우습유·동북로병마부사·비서소감 등을 지냈고, 1071년에는 과거를 주관하기도 했습니다. 문중에서는 그를 고말로의 아들로 전합니다. 고유의 아들 고조기(高兆基)는 예종·인종·의종을 섬기며 중서시랑평장사까지 지내, 제주 출신으로 처음 재상 반열에 오른 인물로 꼽힙니다. 고려 중기 이후 상당수 후손이 개경으로 올라가 벼슬하면서 개성·장단 등 경기 일대에도 터전을 이루었습니다.

탐라에서는 성주의 계보가 이어졌습니다. 고려 후기의 성주 고인단(高仁旦)은 1294년 탐라가 고려에 완전히 돌아오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고려 말 성주를 지낸 고신걸(高臣傑)의 아들 고봉례(高鳳禮)는 1402년 성주·왕자의 칭호를 좌도지관·우도지관으로 바꿀 것을 청했습니다. 이로써 탐라의 독자적 칭호는 조선의 제도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고신걸의 손자 고득종(高得宗)은 한성부판윤에 올라 영곡공파를 열었습니다.

제주 고씨는 여러 파로 나뉩니다. 앞의 세 파 외에도 고려의 학자 고경을 파조로 하는 문충공파, 고인비를 파조로 하는 화전군파, 장흥백파·문정공파·상당군파·양경공파 등이 있습니다. 또 문헌에는 장흥·개성·연안·상당·안동 등 10여 개의 분관(分貫)이 전합니다. 임진왜란 때 순절한 의병장 고경명 부자는 분관인 장흥 고씨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문과보다 무과 급제자가 훨씬 많아, 무과 220여 명을 배출했다는 집계가 있습니다. 근현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국무총리와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고건, 시인 고은 등이 제주 고씨입니다.

주요 인물

세거지와 유적

제주시 이도일동의 삼성혈(三姓穴)은 사적으로 지정된 고·양·부 삼성의 발상지입니다. 1698년에 세운 삼성전에 삼을나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4월 10일과 10월 10일에 춘추대제를 지냅니다. 이때 세 성씨가 돌아가며 헌관을 맡습니다. 12월 10일에는 탐라 개국을 기리는 건시대제가 제주도민제로 열립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의 혼인지(婚姻池)는 삼신인이 벽랑국 세 공주와 혼례를 올린 곳으로 전하며,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제주시 아라동에는 고조기의 묘가 있습니다. 묘의 주인이 알려진 제주의 분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평가되며, 1977년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사성(莎城) 대신 돌기둥을 세운 점이 특징이며, 후손들이 매년 9월에 제향을 올립니다.

제주 밖으로는 개성·장단 등 경기 일대, 문충공파가 세거한 전북 옥구(지금의 군산), 화전군파의 전남 구례, 영곡공파 후손이 퍼진 각지 등 전국에 고루 흩어져 삽니다. 영곡공파 가운데 맏아들 고태필의 후손은 주로 제주에 남았습니다.

계파와 세계(世系)는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주요 파(派)

성주공파, 전서공파, 영곡공파, 문충공파, 화전군파, 장흥백파, 상당군파, 양경공파

성주공파 (星主公派)

성주공파는 고인단(高仁旦)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탐라의 고씨는 고려 이후 조선 초기까지 성주(星主)의 칭호를 이어 받으며 탐라를 다스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10세 고인단의 자손인 성주공파와 전서공파는 청주와 서울, 일본 등지에 많이 살았던 사실이 계해보에 보인다고 합니다.

전서공파 (典書公派)

전서공파는 고신걸(高臣傑)을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고신걸은 고려 말 탐라 성주를 지낸 인물로 전해지며, 조선 초 영곡공 고득종의 할아버지입니다.

성주공파와 함께 청주·서울 등지에 세거한 계열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곡공파 (靈谷公派)

영곡공파는 고득종(高得宗, 1388~1452)을 파조로 합니다. 고득종은 고신걸의 손자이자 상장군 고봉지(高鳳智)의 아들로, 1414년 문과에 급제한 뒤 1439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동지중추원사와 한성부판윤을 지냈습니다. 호는 영곡(靈谷)이며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습니다.

맏아들 고태필(高台弼)의 후손은 주로 제주도에 세거했고, 고태승·고태보·고태익의 후손은 전국 각지에 퍼져 살았습니다.

문충공파 (文忠公派)

문충공파는 고려의 학자 문충공 고경(高慶)을 파조로 합니다. 고경의 고조부 고돈겸(高惇謙)은 12세기 중엽 중앙 관리로 있다가 옥구현(현 전북 군산)으로 유배되어 정착했으며, 이 파의 옥구 입향조로 여겨집니다.

고려조에 이른바 9상서·12한림을 배출했다고 전하며, 개성과 전북·경기 등지에 많이 살았고 일부는 황해도 연백으로 옮겨 갔습니다.

화전군파 (花田君派)

화전군파는 화전군(花田君) 고인비(高仁庇)를 파조로 하는 파입니다. 14세 고숭례(高崇禮)의 후계가 전남 구례로 옮겨 갔으며, 고인비의 9대손 고광후(高廣後)가 인조 때 이인거의 난을 피해 횡성에서 영월로 이주했다고 전합니다.

장흥백파 (長興伯派)

장흥백파는 고중연(高仲莚)을 파조로 하는 파로 전합니다. 후손은 장성 삼계 등 전라남도 일대에 많이 세거했습니다.

이 계통은 자료에 따라 장흥을 본관으로 따로 쓰기도 하며, 장흥 고씨는 제주 고씨에서 갈라진 분관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상당군파 (上黨君派)

상당군파는 고공익(高恭益)을 파조로 하는 파로 전합니다. 12세 고철(高哲) 대에 함경도 북청에 정착했다고 하며, 함경도와 청주 일대에 세거했습니다.

자료에 따라 이 계통을 상당 고씨로 분관한 것으로 적기도 합니다.

양경공파 (良敬公派)

양경공파는 고령신(高令臣)을 파조로 하는 파로 전합니다. 후손은 경상북도 상주·문경 일대에 많이 살았습니다.

자료에 따라 이 계통을 개성 고씨로 분관한 것으로 적기도 합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고을나(탐라 삼성 신화의 시조), 고유(탐라 출신 첫 중앙 진출 문신), 고조기(고려 중서시랑평장사), 고인단(고려 후기 탐라 성주), 고여(조선 개국공신), 고봉례(탐라 성주·좌도지관), 고득종(통신사·한성부판윤), 고태필(고득종의 맏아들·전라감사), 고언백(임진왜란 무장·선무공신), 고희동(최초의 서양화가), 고황경(서울여대 설립자·사회학자), 고형곤(철학자·국회의원), 고건(서울시장·국무총리), 고은(『만인보』의 시인), 고두심(《전원일기》 배우)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제주 고씨 친일 인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결정 명단·《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등에 오른 제주 고씨 계열 인물입니다.

고황경 (1909~2000)서울여자대학교 설립자, 사회학자(친일반민족행위 관련 명단에 포함)

우리 제주 고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제주)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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