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9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한성부판윤, 호는 영곡, 시호는 문충
| 생몰 | 1388 ~ 1452 |
| 시대 | 조선 초기 |
| 본관 | 제주 고씨 |
고득종(高得宗, 1388~1452)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제주입니다. 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시호는 문충(文忠)입니다. 증조부는 고순원, 할아버지는 탐라 성주를 지낸 고신걸, 아버지는 상장군 고봉지입니다. 생몰년은 자료마다 다르며 제주 지역 기사에는 1389~1460으로 적은 것도 있습니다.
1413년 효행으로 천거되어 직장이 되었고, 1414년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습니다. 1427년에는 문과 중시에서도 을과에 올랐습니다. 이후 첨지중추원사·호조참의·예조참의를 거쳐 동지중추원사와 한성부판윤을 지냈습니다. 1438년 종마진공사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1439년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아시카가·오우치의 서계를 받아 돌아왔으며 1441년에는 성절사로 명나라를 다시 방문했습니다.
1448년 도전운사가 되어 충청도와 전라도의 쌀을 평안도로 운반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문장과 서예에 뛰어났고 효성이 지극해 사후에 정문이 세워졌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시 몇 편이 실려 있습니다. 황희와 안평대군 등과 교유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아들로 고태필·태정·태보·태익이 전하며, 이 영곡공파는 제주 고씨의 대표적인 파입니다. 선배 격인 고봉례가 성주 칭호를 바꾼 뒤, 그의 집안은 중앙 관료로 활약했습니다.
1413년 효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나아갔고, 1414년 친시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1427년에는 중시에서도 을과였습니다. 이후 중추원과 호조·예조의 참의를 거쳤습니다.
1438년 종마진공사, 1441년 성절사로 명에 다녀왔고, 1439년에는 통신사로 일본에 건너가 서계를 받아 왔습니다. 문장과 서예가 뛰어나 외교 문서에도 이름이 났다고 전합니다.
영모사(강화)와 제주 오현단의 향현사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아들 가운데 고태필의 후손은 주로 제주에 세거했고, 나머지는 전국에 퍼졌습니다. 먼 조상 고조기가 고려 재상이었던 것과 이어지는 중앙 관료 가문의 흐름입니다.
황해도 개풍 재궁동에 안장되었다고 하며,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영모사와 제주시 오현단의 향현사에서 제사를 지냅니다.
아들 고태필·고태정·고태보·고태익이 전합니다. 영곡공파의 파조입니다.
동지중추원사와 한성부판윤을 지냈고, 1439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고득종을 파조로 하는 제주 고씨의 파입니다.
강화군 영모사와 제주시 오현단의 향현사에서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