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간섭기 탐라 성주로 탐라가 고려에 복속되는 데 힘쓴 인물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제주 고씨 |
고인단(高仁旦)은 고려 후기 탐라의 성주로, 생몰 연대는 전하지 않습니다. 『탐라인물고』를 인용한 기사에 따르면 원종 말 삼별초의 김통정이 탐라를 거점으로 삼았을 때 왕자 문창우와 함께 조정에 사태를 알렸고, 고려와 원의 연합군이 이를 토벌했다고 합니다.
삼별초 평정 뒤 원나라는 탐라에 총관부를 설치했습니다. 기사에는 1276년 고인단이 총관이 되었다는 서술이 있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는 그를 총관행서부사로 적는 등 직함 서술이 자료마다 다릅니다. 1284년에는 총관부가 안무사 체제로 바뀌고 1292년에는 지휘사 체제로 바뀌었다고 전합니다.
1294년(충렬왕 20) 고인단과 문창우는 탐라를 고려 본국에 환속시켜 달라고 원 조정에 청했고, 탐라가 고려로 완전히 돌아오는 데 공이 있다고 평가됩니다. 이때 충렬왕에게서 홍정(붉은 가죽띠)·아홀(상아 홀)·모(모자) 등을 받았다고 합니다. 후손은 성주공파의 파조로 모셔지며, 이 계통은 청주와 서울 등지에 세거했다고 전합니다. 탐라의 자치가 고려의 군현 체제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인물입니다.
삼별초 진압 후 원은 탐라에 목마장과 총관부를 두었습니다. 고인단은 그 아래에서 탐라 사람을 대표해 총관 또는 총관행서부사를 맡았다고 전합니다.
1294년 고인단과 문창우의 청으로 탐라가 고려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자세한 청원 경위와 결과는 『고려사』 원문으로 더 확인해야 합니다.
고인단을 파조로 하는 성주공파는 청주·서울 등지에 세거했다고 전합니다. 같은 가문의 고봉례는 조선 초 성주 칭호의 개정을 청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성주공파의 파조로 모셔집니다.
고려 후기 탐라 성주로, 1294년 탐라의 고려 환속에 공을 세웠다고 전합니다.
고인단을 파조로 하는 제주 고씨의 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