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 출신으로는 처음 중앙 정계에 진출한 고려의 문신
| 시대 | 고려 전기 |
| 본관 | 제주 고씨 |
고유(高維)는 고려 전기의 문신으로, 탐라의 성주족인 고씨 출신입니다. 생몰 연대는 전하지 않습니다. 제주문화원 기사에 소개된 『탐라기년』·『제주사인명사전』 기록에 따르면 1045년(정종 11) 남성시(南省試)에서 수석으로 합격했고, 이듬해 동당시에서 3등으로 급제했습니다. 당시 제주는 탁라도(乇羅島)로 불렸고,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는 특수한 행정 단위였기에 그의 급제는 탐라 사람이 중앙 무대에 선 첫 사례로 평가됩니다.
문중에서는 고유가 그 뒤 우습유·동북로병마부사·비서소감 등을 지냈고, 1071년(문종 25) 과거를 주관했다고 전합니다. 다만 이 관직 이력은 이 초안에서 별도의 사료로 확인하지 못해 문중 전승으로 소개합니다. 문중은 그를 중시조 고말로의 아들로 전합니다.
고유의 아들로 전하는 인물이 중서시랑평장사에 오른 고조기입니다. 위키백과는 고조기를 고유의 아들 또는 손자로 적어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탐라 고씨가 중앙 관료 집안으로 자리 잡는 첫 단계를 연 인물이 고유라는 점은 여러 서술이 같습니다.
고유가 응시한 남성시는 중앙 관직으로 가는 과거의 한 단계입니다. 1045년 수석 합격, 이듬해 동당시 3등 급제라는 성적이 전합니다. 최종 합격자는 보통 14명 안팎이었다고 기사에 소개됩니다.
당시 제주는 탁라도로 불리며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았고, 성주족이 자치적으로 다스렸습니다. 이런 곳 출신이 개경 과거에 급제한 것은 드문 일이어서 고려와 탐라의 관계를 보여 주는 사례로 거론됩니다.
문중은 고유를 우습유·동북로병마부사·비서소감을 지낸 인물로, 고말로의 아들로 전합니다. 후손 가운데 고조기가 재상에 올라 제주 고씨의 중앙 진출을 이었습니다.
묘소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로 전하는 고조기가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습니다.
고려 전기 탐라 고씨 출신으로, 탐라 사람 가운데 처음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고 평가받는 문신입니다.
고조기를 고유의 아들로 전하나, 위키백과는 아들 또는 손자로 적어 자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