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의종 때 중서시랑평장사에 오른 고려의 재상, 호는 계림, 시호는 문경
| 생몰 | 1085 ~ 1157 |
| 시대 | 고려 중기 |
| 본관 | 제주 고씨 |
고조기(高兆基, 1085~1157)는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제주입니다. 초명은 고당유, 호는 계림(鷄林), 시호는 문경입니다. 탐라 사람 고유의 아들로 전해지며 위키백과는 아들 또는 손자로 적습니다. 『고려사』 열전은 그가 성품이 강개했고 경서와 사서에 밝았으며 오언시에 뛰어났다고 기록합니다.
1107년(예종 2) 과거에 급제해 남주(南州) 수령을 지냈고, 인종 때 시어사로서 봉우를 탄핵하다 공부원외랑으로 좌천되었습니다. 이후 대관으로 돌아와 이자겸 일당을 배척하자는 상소를 올렸다가 예부낭중으로 물러났다고 합니다. 의종 때에는 1148년 정당문학 판호부사가 되었고, 지공거로서 류정견 등 25인을 뽑았습니다.
1149년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으나 김존중에게 영합했다는 탄핵을 받아 상서좌복야로 좌천되었다가 평장사로 다시 복귀했습니다. 1150년 판병부사, 1151년 중군병마판사 겸 서북면병마판사를 지냈고 1157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주 출신으로는 처음 재상 반열에 오른 인물로 꼽힙니다. 아버지로 전해지는 고유에 이어 탐라 고씨가 중앙에서 자리 잡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1107년 급제한 뒤 남주 수령을 거쳐 인종 때 시어사가 되었습니다. 봉우를 논박하다 좌천되었고, 복귀 뒤에는 이자겸 일파를 물리치자고 상소했다고 합니다.
1148년 정당문학 판호부사로 지공거를 맡아 25인을 뽑았고, 1149년 중서시랑평장사가 되었습니다. 김존중에게 영합했다는 탄핵으로 한때 좌천되었으나 곧 복귀해 병부와 군사 업무를 맡았습니다.
제주시 아라동의 고조기 묘는 피장자가 알려진 제주 분묘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평가됩니다. 사성 대신 돌기둥을 세운 방형분이 특징이며, 후손이 매년 9월 제향을 올립니다. 같은 가문의 고득종은 조선 초 한성부판윤에 올랐습니다.
제주시 아라동 2464번지에 문경공 고조기 묘가 있으며, 1977년 7월 13일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후손들이 묘역을 관리하며 매년 9월 제향을 올립니다.
1149년 중서시랑평장사에 올랐고, 이후 판병부사와 중군병마판사 등을 지냈습니다.
제주시 아라동 2464번지이며 1977년 제주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고유로 전해지나 자료에 따라 할아버지로 적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