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충렬왕을 원나라까지 호종한 장군, 나주 임씨의 원조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고려 후기 |
| 본관 | 나주 임씨 |
임비(林庇)는 고려 후기 원종·충렬왕 때의 무신으로, 나주 임씨가 1세로 모시는 원조(遠祖)입니다. 생몰년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문중은 그를 '시조'가 아닌 '원조'라 부르는데, 그 이전에도 조상이 있었으나 계보가 전하지 않아 임비를 1세로 삼았다는 설명입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는 원종 때 장군으로서 세자 왕심(훗날 충렬왕)이 몽골에 입조할 때 호위했고, 1282년(충렬왕 8) 세자를 호종한 공으로 보좌2등공신에 책록되었습니다. 이후 충청도지휘사가 되었습니다.
9세손 임탁이 고려 말 해남감무를 지내다 조선 개국 후 회진으로 낙향하면서 본관이 회진(뒤에 나주)이 되었습니다. 임비부터 8세 임선까지의 묘소는 실전되어 확인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임비는 원종 때 장군으로서 세자 왕심이 몽골에 입조할 때 호위했습니다. 1269년(원종 10) 돌아오는 길에 임연이 원종을 폐위하고 안경공 왕창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어, 세자를 모시고 연경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1282년 세자를 호종한 공으로 책봉되었습니다. 같은 해 영통사 승려 홍탄의 무고로 순마소에서 국문을 받았으나 무고임이 밝혀져 풀려났고, 1289년에는 충청도지휘사로서 원나라 개주로 보낼 군량을 제때 수송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철직되었다고 합니다.
평택 임씨의 임팔급(林八及)을 도시조로 하는 계통과 같은 뿌리라는 주장이 있으나, 나주 임씨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확인되는 계보 기록도 없습니다. 임씨 전체를 은나라 비간에게 잇는 전승이나 백제 목(木)씨에서 나왔다는 가설은 전승·가설로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묘소는 실전되어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며(개성 근방으로 추정하는 설명이 있음), 후손은 중시조 임탁의 묘에서 시제를 올립니다.
9세손 임탁이 회진에 입향해 오늘의 나주 임씨로 이어졌고, 파는 임탁의 손자 대부터 갈라졌습니다.
문중은 임비를 '시조'가 아닌 '원조(遠祖)'로 부르며 1세로 삼습니다. 그 이전 조상이 있었으나 계보가 전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평택 임씨의 도시조는 임팔급입니다. 같은 뿌리라는 주장이 있으나 나주 임씨 측은 인정하지 않고 확인되는 기록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