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감무를 지내다 조선 개국 후 회진에 낙향한 나주 임씨 중시조
| 생몰 | 미상 ~ 미상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나주 임씨 |
임탁(林卓)은 임비의 9세손으로, 고려 말 해남감무를 지낸 나주 임씨의 중시조입니다. 생몰년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금성 회진(지금의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으로 내려가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켰다고 전합니다.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기리는 설명도 있으며, 낙향 시기는 1392년 또는 1393년으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후손이 회진에 세거하면서 처음 본관을 회진으로 삼았고, 회진이 나주에 속하게 되면서 나주로 고쳤습니다. 임탁의 대종가는 630여 년 이어 왔다고 하며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3호입니다.
임탁은 고려 말 해남감무를 지냈으며, 조선 건국 후 벼슬을 버리고 회진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1393년 회진에 대종가를 열었다는 소개(남도일보)도 있습니다.
회진에 터를 잡은 후손은 '회진 임씨'라 불렸고, 회진이 나주에 속하게 되면서 1800년 경신보(악정공 임상정)를 간행할 때 관향을 나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부는 회진 임씨·금성 임씨로 적습니다.
회진리의 나주 임씨 대종가는 정유재란 뒤 중건되어 안채·사랑채·사당·제청 등이 남아 있고, 나주에서 창건 위치를 지켜 온 유일한 곳으로 소개됩니다. 가까이에 영모정(전남 기념물 제112호)이 있습니다.
전남 나주시 문평면 옥당리에 묘소가 있다고 하며, 임비 이하 초기 선대의 묘가 실전되어 이 묘에서 시제를 올린다고 합니다.
손자 임유소가 도정공파의 파조이고, 그 손자 대에서 임붕 집안 등 여러 파가 갈라졌습니다.
조선 개국 후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고 전합니다. 이 때문에 두문동 72현으로 기리는 설명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회진을 본관으로 삼았다가, 회진이 나주에 속하게 되자 나주로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