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임씨 족보·가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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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 임씨(羅州 林氏) — 고려 충렬왕을 원나라까지 호종한 임비(林庇)를 원조로 하고, 전남 나주 회진에서 번성한 임(林)씨의 대표 본관입니다. 시인 임제, 영화감독 임권택, 통일부 장관 임동원, 국회의장 임채정 등이 이 본관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구 — 약 277,699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나주 임씨란

고려 충렬왕을 원나라까지 호종한 임비(林庇)를 원조로 하고, 전남 나주 회진에서 번성한 임(林)씨의 대표 본관입니다. 시인 임제, 영화감독 임권택, 통일부 장관 임동원, 국회의장 임채정 등이 이 본관 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나주 임씨 인구는 약 277,699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임씨라도 본관(나주)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나주 임씨의 뿌리와 역사

나주 임씨(羅州 林氏)는 전라남도 나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임(林)씨의 대표 계열입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나주 임씨는 277,699명으로 집계되었고, 같은 계통으로 묶이는 금성 임씨(6,305명)·회진 임씨(5,540명)·나주 림씨(14명)를 합치면 289,558명이라고 위키백과가 소개합니다. 임씨 가운데 본관별 인구가 가장 많은 본관으로 꼽힙니다. 2000년 통계청 추정치(23만여 명)와 비교하면 15년 사이 늘어난 규모입니다.

원조 임비와 '시조'를 둘러싼 이야기

문중은 고려 충렬왕 때의 무신 임비(林庇)를 1세로 삼습니다. 임비는 원종 때 장군으로서 세자 왕심(훗날 충렬왕)이 몽골에 입조할 때 호위했고, 1282년(충렬왕 8) 세자를 호종한 공으로 보좌2등공신에 책록되었으며 뒤에 충청도지휘사까지 지냈다고 『고려사』를 바탕으로 한 자료들이 전합니다. 다만 나주 임씨 문중은 임비를 '시조'가 아니라 '원조(遠祖)'로 부릅니다. 임비 이전에도 조상들이 있었으나 계보가 전하지 않아 임비를 1세로 삼았다는 설명입니다.

이 점에서 평택 임씨의 시조로 알려진 임팔급(林八及)과는 구분해 읽어야 합니다. 평택 임씨는 임팔급을 도시조로 하고 나주 임씨는 임비를 원조로 하며, 두 계통이 한 뿌리라는 주장이 있으나 나주 임씨 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계보상 확인되는 기록도 없다고 소개됩니다. 따라서 이 페이지는 임팔급을 나주 임씨의 시조로 적지 않습니다.

임씨의 시원에 관한 설

임씨 전체의 기원은 중국 은(상)나라의 충신 비간(比干)과 그 아들 견(堅)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전승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일본의 『신찬성씨록』에는 백제계 '하야시(林)'씨가 백제 대성팔족의 하나인 목(木)씨의 후손이라고 적혀 있어, 마한 목지국의 지배층이 백제에 편입되어 목씨가 되고 이것이 나주 임씨의 뿌리라는 가설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모두 전승이나 가설이며, 확인된 계보는 임비부터라는 점을 구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회진 입향과 본관의 변화

본관이 나주가 된 것은 임비의 9세손 임탁(林卓)에게서 비롯됩니다. 임탁은 고려 말 해남감무를 지냈고,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금성(錦城) 회진(會津)으로 낙향해 절의를 지켰다고 전합니다(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기려진다는 설명도 있으며, 입향 연도는 1392년 또는 1393년으로 자료마다 다릅니다). 후손이 회진에 세거하면서 처음에는 '회진 임씨'로 불렸고, 회진현이 나주에 속하게 되면서 본관을 나주로 고쳤습니다. 1800년 악정공 임상정이 경신보를 간행하면서 관향 표기를 나주로 정리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일부는 회진 임씨, 금성 임씨로 적습니다.

가문의 번성

조선 초기 임붕과 그 아들들 대에 가세가 크게 일어나 파가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임탁의 손자 임유소를 파조로 하는 도정공파가 먼저 나뉘었고, 임유소의 큰손자 임귀연의 후손에서 장수공파·정자공파·절도공파·첨지공파·생원공파·첨추공파가, 둘째 손자 임귀량의 후손에서 진사공파가 나왔다고 설명됩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49명을 포함해 218명이라는 집계(세계일보)가 있고, 위키백과는 문과 급제자를 53명으로 소개합니다. 집계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정승에 오른 이는 순조 때 우의정을 지낸 임한호가 대표로 꼽히고, 이조판서 임담, 황해도관찰사 임서, 시인 임제, 의병장 임환 등이 이름을 남겼습니다. 가훈(종훈)은 '청고근졸(淸高謹拙)'로 소개되며, 청백리가 많았다는 점을 문중이 자랑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근현대

일제강점기에는 회진개혁청년회(1931) 등 지역 계몽·항일 활동이 있었고, 외무부 장관을 지낸 임병직이 독립운동과 외교에서 활약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명창 임방울, 영화감독 임권택, 통일부 장관 임동원, 국회의장 임채정 등이 각 분야에서 알려졌습니다.

문중 자료와 백과 자료의 세대 수·연대가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족보로 확인하세요.

주요 파(派)

도정공파, 진사공파, 절도공파, 정자공파, 장수공파, 첨지공파, 생원공파, 첨추공파, 금수공파, 가의공파, 동지공파

도정공파 (都正公派)

도정공파는 도정(都正)을 지낸 임유소(林有巢)를 파조로 합니다. 임유소는 임탁의 손자이자 임봉(林鳳)의 아들로, 조선 개국 뒤 할아버지·아버지와 함께 회진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킨 것으로 전해집니다. 임탁의 손자 대에서 가장 먼저 갈라진 파로 소개됩니다.

임유소의 두 손자 가운데 큰손자 임귀연의 후손에서 장수공파·정자공파·절도공파·첨지공파·생원공파·첨추공파가, 둘째 손자 임귀량의 후손에서 진사공파가 나왔다고 설명됩니다. 그래서 도정공파는 나주 임씨 여러 파의 윗가지에 해당하며, 족보에서는 임유소를 11세로 셉니다.

임유소는 경남 함양 지역 나주 임씨의 입향조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본향 회진리의 대종가와 임붕이 지은 영모정 일대가 이 계통의 뿌리가 되는 터전으로 이야기됩니다. 파조의 묘소와 도정공파 종중의 구체적 현황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진사공파 (進士公派)

진사공파는 진사(進士) 임귀량(林貴樑)을 파조로 합니다. 임귀량은 원조 임비의 13세손으로, 도정공 임유소의 둘째 손자입니다.

그의 후손 임관(林鸛, 1548년생)이 16세기 중엽 충남 당진 석문면 삼봉리에 들어와 살았고(생원을 지내 후손 일부를 생원공파로도 부릅니다), 임관의 손자 임항이 교로리로 분가하면서 집성촌이 크게 번성했다고 합니다. 입향 세대의 서술은 자료마다 '손자'와 '17세'로 엇갈립니다.

당진 석문면 삼봉리·교로리의 나주 임씨는 주로 이 계통에 속하며 14대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집니다. 교로리 2구에는 한때 80여 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40여 호로 줄었고, 교로리 80-1번지에 약 1만여 평의 선산과 '나주임씨 진사공파 회관' 사당이 있어 해마다 10월 시제를 지낸다고 합니다. 삼봉리에 있던 임관과 아들 임예(1576~1597)의 묘는 실전되었습니다. 당진 후손 다수는 부호군·호참 같은 향반의 명예직을 지내며 석문면의 지역 유지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같은 지역의 열녀문·효열비도 이 문중과 관련해 소개됩니다.

절도공파 (節度公派)

절도공파는 병마절도사를 지낸 임진(林晉)(1526~1587)을 파조로 합니다. 귀래정 임붕의 아들이자 임복의 동생으로,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판관을 거쳐 5도병마절도사에 올랐습니다. 제주목사 때의 선정으로 청백리에 녹선되고 임금에게서 도연명의 『정절집』을 받았으며, 전라우도수군절도사로 흑산도 일대 해적을 소탕했다고 전합니다.

맏아들이 1549년 나주 회진에서 태어난 시인 백호 임제입니다. 아래로 선·순·환·탁 형제가 있었고, 강계부사 임순(해은, 1553~1600)은 강계공 종가의 중심 인물입니다. 임환은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강계공 종가는 이후 16대를 이어 왔고, 호산 추원당과 임장유 묘비(영암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 약 300년 된 호랑가시나무 보호수, 임진이 받은 『정절집』, 간찰 1천여 통(155통 번역 간찰집 발간) 등을 보존한다고 합니다.

후손으로는 문과 장원급제 후 대사헌과 공조·예조·이조 판서를 지낸 임긍수(1800~1876), 일제강점기 금주단연회동맹과 야학으로 민족경제자립운동을 이끈 임종순(1880~1939), 회진개혁청년회(1931)를 세워 항일 계몽운동을 펼친 임용택(1905~1980) 등이 소개됩니다. 임제의 후손은 전북 진안 등지에도 세거하며, 임제의 현손 임도(林燾)가 나주에서 진안 정천면 농산리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전북 순창에는 임용진(1756~)·임문수(1802~)의 교지와 유품이 '나주임씨 절도공파 종중유품'(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1호)으로 전해집니다. 가훈은 '인지위덕(忍之爲德)'입니다.

정자공파 (正字公派)

정자공파는 승문원 정자(正字)를 지낸 임복(林復)(1521~1576, 호 풍암)을 파조로 하며, 그를 원조 임비의 16세손으로 기록합니다. 임복은 임붕의 아들로 1546년 증광문과에 급제했으나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정미사화)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되었다가 1551년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우 임진과 함께 아버지를 기려 영모정을 세웠다고 전하며, 보물 제1879호 「희경루방회도」의 주인공으로 소개됩니다. 아들 임서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냈고, 임서의 신도비는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에 있습니다(소유는 습정공파종중으로 표기됩니다).

임복의 손자 몽촌(夢村) 임타(林㙐)의 아들들이 17세기 후반 전북 진안으로 옮겨 살았으며, 진안 정천면 갈용리에는 정자공파 상주공계 용담 문중의 세천비와 재실 영모각이 있습니다. 유호공·상주공(몽촌)·동리공 3부자의 문집이 준비되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사후 임복에게는 병조판서가 증직되었습니다.

장수공파 (長水公派)

장수공파는 임익을 파조로 하는 것으로 소개되나 자료에서 한자 표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위키백과·나무위키가 파조를 임익으로 적고, 나주 임씨 문중 기사는 16세 임익의 자손 일부가 나주에서 금산·예산·부안·광주·무안·해남·강진·완도 등으로 퍼져 나갔다고 전합니다.

임유소의 큰손자 임귀연의 후손에서 갈라진 파로 설명됩니다. 파조의 관직과 묘소, 종중 현황은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첨지공파 (僉知公派)

첨지공파는 첨지(僉知)를 지낸 임몽을 파조로 하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남도일보 보도에 따르면 임복·임진과 함께 임붕을 기리는 영모정을 세운 인물로 소개됩니다(임붕과의 관계는 형제 항렬로 보이나 이번에 계보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임귀연의 후손에서 갈라진 파로 설명되며, 파조의 생몰과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생원공파 (生員公派)

생원공파는 임학을 파조로 하는 것으로 소개되며, 임귀연의 후손에서 갈라진 파로 설명됩니다. 한편 당진 지역 자료는 입향조 임관(1548년생)이 생원이어서 그 후손을 생원공파로도 부른다고 하는데, 두 설명의 관계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당진 석문면 삼봉리·교로리 일대 후손의 집성촌은 진사공파 항목을 참고하세요.

첨추공파 (僉樞公派)

첨추공파는 첨추(僉樞)를 지낸 분을 파조로 하며 임귀연의 후손에서 갈라진 파로 세계일보 연재(2013) 등에 소개됩니다. 파조의 이름과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금수공파 (錦繡公派)

금수공파는 임광수를 파조로 하는 것으로 위키백과에 소개되나 한자와 관직·세거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문중 기사는 이 파를 가의공파와 함께 나주 임씨의 10개 파에 포함해 설명합니다.

가의공파 (嘉義公派)

가의공파는 임수소를 파조로 하는 것으로 위키백과에 소개되나 한자와 관직·세거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문중 기사는 이 파를 금수공파와 함께 10개 파에 포함해 설명합니다.

동지공파 (同知公派)

동지공파는 임안을 파조로 하는 것으로 위키백과에 소개되며, 동지(同知)를 지낸 분의 이름을 딴 파로 설명됩니다. 파조의 생몰과 세거지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대표 인물

임비(원조, 고려 장군), 임탁(회진 입향 중시조), 임붕(귀래정, 영모정), 임복(정자공파 파조), 임진(절도공파 파조, 제주목사), 임제(백호, 시인), 임환(의병장), 임서(황해도관찰사), 임담(이조판서), 임한호(우의정), 임병직(외무부 장관), 임방울(명창), 임권택(영화감독), 임동원(통일부 장관), 임채정(국회의장)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나주 임씨 독립유공자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정보(공공데이터)를 참고한 나주 임씨 계열 독립유공자입니다. 이름을 누르면 공적을 볼 수 있습니다.

임병직 (1893~1976)이승만 비서, 구미위원부 활동, 제2대 외무부 장관·유엔 대사

세거지

본향은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로, 종가가 600여 년간 이어 온 곳입니다. 다시면 회진리와 동강면 월송리에 각각 200여 호가 모여 산다는 2007년 기사(백세시대)가 있습니다. 호남(나주·완도·장성 등)에 많이 살며, 16세 임익의 자손 일부는 금산·예산·부안·광주·무안·해남·강진·완도 등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충남 당진 석문면 삼봉리·교로리에는 진사공파·생원공파 후손의 집성촌이 있고(교로리 2구는 한때 80여 호였으나 지금은 40여 호), 경북 달성과 충남 서천·부여, 경남 창원 등에도 거주합니다. 창원에는 나주 임씨 3대 효자비가 나란히 서 있다고 소개됩니다.

유적과 사당

지정 번호와 개방 여부는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에 나주시·영암군 등에 확인하세요.

종친회와 문중 조직

종중 업무는 나주임씨대종중이 맡고, 대종중 산하 친목 조직으로 중앙화수회가 있습니다(임병직이 창립했다고 소개). 대종중의 공식 주소는 www.najulim.org 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작업에서는 접속(보안 인증서 오류)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2007년 기사 기준 대종손은 임정렬(35세)입니다. 소속 파와 지역 종친회는 문중에 문의하세요.

항렬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항렬자는 24세 진(鎭), 25세 수(洙), 26세 상(相), 27세 묵(默)·병(炳), 28세 규(圭), 29세 종(鍾)·석(錫), 30세 택(澤)·순(淳), 31세 채(采)·동(東)·근(根), 32세 섭(燮)·열(烈), 33세 재(在)·기(基)·중(重), 34세 현(鉉)·선(善), 35세 해(海)·태(泰)·자(滋), 36세 식(植)·집(集), 37세 광(光)·환(煥), 38세 균(均)·곤(坤), 39세 호(鎬)·용(鏞), 40세 승(承)·원(源), 41세 영(榮)·낙(樂), 42세 희(熙)·현(顯), 43세 재(載)·교(敎), 44세 록(錄)·일(鎰), 45세 준(準)·연(淵), 46세 모(模)·업(業), 47세 연(然)·성(性)입니다. 원문에 일부 글자가 깨져 있어 오행 배열을 모두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파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반드시 우리 집안 족보와 대조하세요.

대표 인물

고려의 임비와 중시조 임탁, 영모정의 임붕, 정자공파 파조 임복, 절도공파 파조 임진, 시인 임제, 의병장 임환, 황해도관찰사 임서, 이조판서 임담, 우의정 임한호, 외무부 장관 임병직, 명창 임방울, 영화감독 임권택, 통일부 장관 임동원, 국회의장 임채정이 있습니다. 같은 임씨라도 평택 임씨·풍천 임씨(任) 등은 별개 본관이니 임비 계통인지 족보로 확인하세요.

우리 나주 임씨 가계도, 이렇게 만드세요

  1. 나부터 등록 — 로그인하면 나만의 트리가 생깁니다. 본인 이름·생년·본관(나주)을 입력합니다.
  2. 윗대 올리기 — 부모·조부모를 추가합니다. 정확한 확인은 제적등본으로 조상 찾기를 참고하세요(보통 5대까지).
  3. 형제·자녀 연결 — 항렬(돌림자) 순으로 정렬하면 세대가 한눈에 정리됩니다.
  4. PDF·공유 — 완성한 가계도를 PDF로 저장하고 가족을 초대해 함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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