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때 별시 문과 장원, 광주목사·경주부윤을 지내고 귀래정(영모정)을 지은 문신
| 생몰 | 1486 ~ 1553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나주 임씨 |
임붕(1486~1553)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나주, 호는 귀래정(歸來亭)입니다. 원조 임비의 15세손으로 소개됩니다. 중종 때 별시 문과에서 장원을 했고 광주목사·승지·경주부윤 등을 지냈습니다.
성균관 유생을 이끌고 조광조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소를 올렸다고 전하며, 이후 낙향해 회진에 정자를 지었습니다. 이 정자가 지금의 나주 영모정이 되었습니다.
아들로 임복과 임진 등이 있으며, 이들의 후손이 각각 정자공파와 절도공파를 이룹니다. 손자는 시인 임제입니다. 아버지 임평의 신위는 회진 부조묘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중종 때 별시 문과에서 장원을 했고 광주목사·경주부윤 등을 지냈다고 합니다.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처형된 뒤에는 성균관 유생을 이끌고 그의 억울함을 상소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남도일보).
위키백과는 임붕이 1520년 회진에 귀래정을 지었다고 소개합니다. 정유재란(1597)에 불타 1622년 중건되었고, 후손이 1555년 영모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현재 건물은 1982년 다시 지은 것이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112호입니다. 영모정은 임복·임진 등이 그를 기려 세웠다는 소개도 함께 전해집니다.
임붕 대에 나주 임씨는 문과와 무과, 학문과 문학에서 크게 이름을 얻었습니다. 아들 임복·임진과 손자 임제 등이 이어졌고, 영모정은 지금도 문중이 음력 10월에 제향하는 곳입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영모정(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 그를 기리는 유허비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아들 임복(정자공파)·임진(절도공파)과 손자 임제·임서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위키백과는 임붕이 1520년 귀래정을 지었고 후손이 1555년 영모정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소개합니다. 남도일보는 임붕을 기려 후손이 세웠다고 소개하는 등 설명이 조금 다릅니다.
15세로 소개되는 자료가 많으나, 세계일보 기사는 14세손으로 적어 자료마다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