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공파 파조, 승문원 정자,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유배된 문신 (호 풍암)
| 생몰 | 1521 ~ 1576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나주 임씨 |
임복(1521~1576)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나주, 자는 희인(希仁), 호는 풍암(楓巖)입니다. 임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이종의의 딸이고, 원조 임비의 16세손으로 나주 임씨 정자공파의 파조입니다.
1546년 증광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정자가 되었으나, 1547년 정미사화(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되었다가 1551년 특사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선조 초에 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무고를 받아 취임하지 못하고 다시 낙향했습니다.
동생 임진 등과 함께 영모정을 세웠다고 전하며, 보물 제1879호 「희경루방회도」의 주인공으로 소개됩니다. 아들 임서는 황해도관찰사를 지냈습니다. 사후 병조판서에 증직되었습니다.
1546년 증광 을과에 급제해 승문원 정자가 되었습니다.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되었고, 1551년 풀려나 귀향했습니다.
선조 즉위 초 박사에 임명되었으나 무고로 부임하지 못했습니다. 선조에게 군비 강화를 건의한 기록이 전한다는 소개도 있습니다. 보물 제1879호 「희경루방회도」(나주 관련 계회도)의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를 파조로 하는 정자공파는 아들 임서와 손자 대를 거쳐 전북 진안 등지까지 퍼졌습니다. 진안 정천면 갈용리에는 상주공계 용담 문중의 세천비와 재실 영모각이 있습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임서가 황해도관찰사를 지냈고, 손자 임담 등으로 이어집니다. 손자 몽촌 임타의 아들들은 17세기 후반 전북 진안으로 옮겨 살았습니다.
1547년 정미사화에 이어진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주로 유배되었고 1551년에 풀려났습니다.
승문원 정자를 지낸 임복(풍암)입니다. 원조 임비의 16세손으로 기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