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반정 후 황해도관찰사로 이괄의 난을 진압한 문신 (호 석촌)
| 생몰 | 1570 ~ 1624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나주 임씨 |
임서(1570~1624)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나주, 호는 석촌(石村)입니다. 풍암 임복과 남평 서씨의 아들로 회진에서 태어났습니다.
1599년 문과에 급제해 공조·예조·병조의 좌랑을 지내고, 전라도안핵사와 무장현감을 거쳐 1610년 병조정랑이 되었습니다. 1612년 폐모론이 일어나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안동부사와 황해도관찰사를 지냈고, 이듬해 이괄의 난 때 적을 토벌하고 군량을 보급한 공으로 가선대부로 승계되었습니다. 평생 청렴하다는 평을 들었고, 청음 김상헌이 신도비문을 지었습니다.
1599년 급제 후 여러 좌랑을 거쳐 1610년 병조정랑이 되었습니다. 1612년 폐모론에 반대해 사직하고 낙향했다는 서술이 있습니다.
인조반정 후 안동부사와 황해도관찰사로서 폐단을 없애고 농업을 장려하며 군사 훈련에 힘썼다고 합니다. 이괄의 난 때는 적을 토벌하고 군량을 보급했습니다.
청음 김상헌이 지은 신도비가 가운리에 있으며, 비문에서도 평생 청렴한 관료로 칭송됩니다. 저서로 『석촌유고』가 전한다고 합니다.
신도비가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159-2에 있습니다(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7호, 2013년 지정, 1985년 건립).
아들로 이조판서를 지낸 임담이 소개됩니다(자료마다 부자 관계 서술이 다를 수 있습니다).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에 있으며 나주시 향토문화유산 제37호입니다.
황해도관찰사로서 적을 토벌하고 군량을 보급해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