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종 때 이조판서·예조판서·대사헌을 지낸 청백리 문신 (호 청구, 시호 충익)
| 생몰 | 1596 ~ 165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나주 임씨 |
임담(1596~1652)은 조선 인조·효종 때의 문신으로 본관은 나주,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구(淸癯), 시호는 충익(忠翼)입니다. 원조 임비의 18세손으로 소개됩니다. 문중 자료는 임서의 아들로 소개하나, 위키백과 항목에는 부모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1635년(인조 13) 문과에 급제해 동부승지·대사간·도승지·이조참판을 지냈고, 효종 즉위 후 대사헌·예조판서·이조판서를 역임했습니다. 효종 즉위 후 김자점 일당을 처벌하는 데 참여했고, 효종의 신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청백리로 평가되며, 반송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급사했습니다. 세계일보 기사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을 지켰다고 하고, 청빈하여 형 임연이 집을 사 주었다는 일화를 전합니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는 소개도 있습니다.
동부승지(1639), 대사간(1648), 도승지(1649)를 지냈고 이조참판·이조판서·대사헌·형조판서·예조판서·우참찬 등을 역임했습니다.
효종이 즉위하자 김자점 일당을 처벌하는 데 참여했고, 효종의 신임을 받았다고 합니다.
청백리로 평가되며, 반송사로 청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급사했습니다. 가문에서는 영의정 추증과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 수비를 함께 소개하지만, 이 부분은 자료마다 서술이 달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묘소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현손 임한호가 순조 때 우의정에 올랐습니다.
충익(忠翼)입니다.
현손 임한호가 순조 때 우의정에 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