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차 왕자의 난의 공신으로 장흥부원군에 오르고 전라병영성을 쌓은 무신, 시호 충정
| 생몰 | 1358 ~ 1431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장흥 마씨 |
마천목(1358~1431)은 고려 말~조선 초의 무신으로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군련(君戀), 호는 오천(梧川), 시호는 충정(忠靖)입니다. 고려 전라주도 장흥부 회령에서 태어났고 장흥 마씨 11세손입니다. 아버지는 마영, 어머니는 평산 신씨이며, 부인은 목사 이빈의 딸 경주 이씨로 기록됩니다. 4대조 마희원은 문하시중, 3대조 마중기는 정당문학을 지냈다고 합니다.
1381년(우왕 7) 산원에 임명되었고, 전라도에서 왜구를 물리친 정지를 따랐다고 합니다.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안군(이방원)을 도와 대장군이 되었고, 1399년 상장군이 되었으며, 1401년 태종 즉위 뒤 제2차 왕자의 난에서의 활약 등으로 익대좌명공신 3등에 녹훈되어 회령군에 봉해졌습니다. 1408~1409년 겸중군총제로 있을 때 한 사건으로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나 태종의 배려로 곡성에 유배되는 데 그쳤고 곧 전라도도절제사로 복직되었습니다. 1414년 장흥군으로 개봉되었습니다.
1417년 전라도병마도절제사로서 강진 전라병영성을 쌓았다고 전하며, 1420년(세종 2)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성보론을 올리면서 북방 6진 설치를 처음 주장했다고 합니다. 1429년 장흥부원군에 진봉되고 영돈녕부사 겸 영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며, 1431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 뒤 세종은 의정부 영의정을 추증하고 충정의 시호를 내렸습니다. 그의 외손녀의 딸이 폐비 윤씨여서 연산군의 외고조 항렬로 소개됩니다. 묘와 재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에 있고, 경북 의성의 화산서원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좌명공신녹권은 보물 제1469호입니다.
1417년 강진에 전라병영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 성은 사적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401년 좌명공신 책봉 때의 녹권이 보물 제146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마승 등 아들들과 장흥 마씨 문서도 보세요.
전라남도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에 묘와 재실이 있으며, 전라남도 기념물 제252호입니다.
네 아들이 각각 문간공파(마승), 조은공파(마전), 현감공파(마반), 참판공파(마춘)를 이루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