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건국을 도운 개국공신, 장흥 마씨의 득관시조로 전함
| 시대 | 백제 건국기 |
| 본관 | 장흥 마씨 |
마려(馬黎)는 백제의 개국공신으로, 장흥 마씨와 목천 마씨의 시조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생몰년과 출생지, 사망지는 모두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삼국사기』는 백제 건국에 공을 세운 십제공신 열 명 가운데 이름이 나오는 사람으로 마려와 오간을 들며, 나머지는 족보 등에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가 개인 이름으로 『삼국사기』에 나온다는 점은 위키백과가 밝히는 사실입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마려는 고구려 동명왕의 셋째 아들로 소개되는 온조를 이끌고 졸본부여를 피해 남하했습니다. 기원전 18년 온조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울 때 역할을 했으며, 하남 땅의 지리적 이점을 들어 도읍으로 좋다고 권했다고 합니다. 이때 비류는 이를 따르지 않고 미추홀로 떠났으나 환경이 좋지 않아 위례성으로 돌아왔고 그의 백성도 함께 돌아왔다고 전합니다.
건국 뒤 온조왕은 개국원훈인 마려에게 좌보 벼슬을 내렸고, 마려는 온조를 보좌했다고 합니다. 장흥 마씨는 마려를 득관시조로 삼고, 고려 초의 본관 회령이 인종 때 장흥에 속하게 되면서 본관이 장흥으로 바뀌었다고 정리합니다. 다만 백제 건국기 인물의 생애는 사료가 적어 설화적 요소가 섞여 있으므로, 사실 여부는 학계의 해석에 따라 달리 평가될 수 있습니다. 또한 마려에서 장흥 마씨로 이어지는 세계(世系)는 족보에 따른 전승이어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마천목을 중심으로 한 장흥 마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삼국사기』에 이름이 나오는 십제공신은 마려와 오간뿐이라고 위키백과가 설명합니다.
후손의 본관은 회령에서 장흥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장흥 마씨 문서를 보세요.
묘소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