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 마씨(長興 馬氏) — 백제 개국공신 마려를 득관시조로 하며 조선 좌명공신 마천목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진 마씨 계열로 전해집니다.
백제 개국공신 마려를 득관시조로 하며 조선 좌명공신 마천목을 배출한 것으로 알려진 마씨 계열로 전해집니다. 2015년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장흥 마씨 인구는 약 31,886명으로 집계되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성씨·본관 가운데 하나입니다. 같은 마씨라도 본관(장흥)이 다르면 계통이 다른 집안입니다. 본관·파·항렬의 뜻이 궁금하다면 본관·파·항렬 정리 가이드를 참고하세요.
장흥 마씨(長興 馬氏)는 전라남도 장흥군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입니다. 득관시조는 백제 개국공신으로 전하는 마려(馬黎)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마려는 온조를 이끌어 백제를 세우는 데 공을 세우고 좌보(左輔) 벼슬을 받았다고 하며, 십제공신 열 명 가운데 『삼국사기』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은 마려와 오간뿐이라고 정리됩니다. 한편 『마씨대동보』에는 도시조 마완과 그 아들 마장이 은나라 말기에 기자와 함께 조선에 왔다는 이야기도 전하지만, 이는 족보 전승의 영역이므로 사실로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본관은 고려 초에는 회령이었다가, 고려 인종 때 회령이 장흥에 속하게 되면서 장흥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고려 문종 때 마현은 목천 마씨, 마혁인은 장흥 마씨로 갈라졌다고 하며, 영문 위키백과도 두 본관이 한 뿌리에서 나뉘었다고 적습니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장흥 마씨는 31,886명으로 집계되었고, 1985년 23,803명, 2000년 28,337명으로 꾸준히 늘어 왔습니다.

마혁인은 1085년 문과에 급제해 가문 중흥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고, 마희원은 1190년 문과에 급제해 문하시중평장사에 올랐으며, 마중기는 1205년 문과 장원으로 급제해 정당문학을 지냈다고 정리됩니다. 고려 말 홍건적의 침입 때 경성을 수복한 마천린은 공신에 올랐습니다. 이어 11세손 마천목(1358~1431)이 조선 건국기에 제1·2차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워 좌명공신이 되고 장흥부원군에 봉해지면서 가문이 크게 일어났습니다.
마천목의 네 아들은 각각 파를 이루어 문간공파(마승), 조은공파(마전), 현감공파(마반), 참판공파(마춘)가 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장남 마승은 경주부윤을 지내고 청백리로 칭송받았다고 합니다.

문간공파은(는) 장흥부원군 마천목의 네 아들이 각각 이룬 파 가운데 마승을(를) 파조로 하는 계통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마천목의 아들 4형제가 4개 파를 이루었다고 정리합니다. 파의 세부 계보와 분포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종친회와 족보에서 확인해 주세요.
조은공파은(는) 장흥부원군 마천목의 네 아들이 각각 이룬 파 가운데 마전을(를) 파조로 하는 계통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마천목의 아들 4형제가 4개 파를 이루었다고 정리합니다. 파의 세부 계보와 분포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종친회와 족보에서 확인해 주세요.
현감공파은(는) 장흥부원군 마천목의 네 아들이 각각 이룬 파 가운데 마반을(를) 파조로 하는 계통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마천목의 아들 4형제가 4개 파를 이루었다고 정리합니다. 이 파의 후손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마응방이 소개되며, 마응방은 마반의 6대손이라고 합니다. 파의 세부 계보와 분포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종친회와 족보에서 확인해 주세요.
참판공파은(는) 장흥부원군 마천목의 네 아들이 각각 이룬 파 가운데 마춘을(를) 파조로 하는 계통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마천목의 아들 4형제가 4개 파를 이루었다고 정리합니다. 파의 세부 계보와 분포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종친회와 족보에서 확인해 주세요.
파(계파) 구분은 문중·족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우리 집안 파는 족보에서 확인하세요.
마려(백제 개국공신), 마혁인(기세조), 마희원(문하시중평장사), 마중기(정당문학), 마천린(홍건적 개경 수복), 마천목(좌명공신·장흥부원군), 마승(경주부윤·청백리), 마계변(문과 급제), 마하수(명량해전 순국), 마응방(정유재란 순국)
이름을 누르면 인물 상세(생몰·약력·묘소·후손)를 볼 수 있습니다.
마천목은 고려 말 왜구를 토벌한 정지를 따랐고,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안군(이방원)을 도와 대장군이 되었으며, 1401년 태종 즉위 뒤 좌명공신에 녹훈되었습니다. 전라도병마도절제사로서 1417년 강진 전라병영성을 쌓았다고 전하며, 이 성은 조선 후기까지 전라도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 지휘부로 쓰였고 현재 사적 제39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420년(세종 2)에는 병조판서에 임명되어 성보론을 올리며 북방 6진의 설치를 처음 주장했다고 합니다. 1429년에는 장흥부원군에 진봉되었고, 세종은 그가 죽은 뒤 의정부 영의정을 추증하고 충정(忠靖)이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관련 문화유산으로는 마천목좌명공신녹권(보물 제1469호), 곡성 마천목 묘와 재실(전라남도 기념물 제252호), 강진 충정사(강진군 향토문화유산), 경북 의성의 화산서원(의성군 문화유산 제10호)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마천목의 묘와 재실은 전남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에 있으며, 화산서원에는 마천목과 아들 마승 등이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마천목의 외손녀인 장흥부부인 고령 신씨의 딸이 폐비 윤씨로 기록되어, 마천목은 연산군의 외고조 항렬에 해당합니다. 한편 경녕군(태종의 서자)의 계비가 개성부 마씨로 기록된다고 하지만, 이 마씨가 장흥 마씨인지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에는 이순신을 도운 마하수가 네 아들과 함께 명량해전에서 전사했고, 마응방은 의병으로 활약하다 남원에서 순절했다고 전합니다. 조선 문과 급제자 마계변 등 강진·장흥 일대에서 학문과 벼슬로 이어 온 이들도 있습니다.
전남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강진군 군동면·작천면, 고흥군 영남면 등이 집성촌으로 알려져 있고, 경북 의성군, 경남 합천군, 경기도 의정부시, 충남 당진시, 강원도 양양군에도 분포합니다. 한 자료는 함경도 길주·학성·이원·북청 일대에도 퍼져 있었다고 적습니다. 1985년 5,758가구 23,803명이던 인구가 2000년 8,985가구 28,337명, 2015년 31,886명으로 늘어난 것은 위키백과의 집계에 따른 것입니다.
족보를 읽을 때는 시조의 종류를 구분하면 도움이 됩니다. 득관시조(得貫始祖)는 그 본관을 처음 쓰게 된 조상, 기세조(起世祖)는 실제로 기록이 확인되는 첫 조상, 중시조(中始祖)는 쇠퇴한 가문을 다시 일으킨 조상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장흥 마씨에서는 백제 개국공신 마려를 득관시조로, 고려 문종 때 장흥을 본관으로 삼은 마혁인을 기세조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고, 조선 건국기에 가문을 크게 일으킨 마천목을 중시조처럼 받드는 후손도 있습니다. 다만 이 호칭은 종중과 족보마다 다를 수 있어 여기서는 위키백과가 소개하는 표현을 따랐습니다. 마려에서 마혁인 사이의 세계는 사료가 부족해 확인되지 않으니, 종친회 자료를 꼭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장흥 마씨는 목천 마씨와 한 뿌리에서 나뉘었다고 하나 서로 다른 본관입니다. 예를 들어 연세대 교수였던 국문학자 마광수(1951~2017)는 위키백과에 본관이 목천으로 적혀 있어 장흥 마씨와 다릅니다. 같은 마씨라는 이유로 본관을 짐작하지 말고 족보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문서는 한국어·영문 위키백과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공개 자료에서 장흥 마씨로 확인된 인물만 실었습니다. 자료가 많지 않은 본관이라 인물과 파의 세부 계보는 일부만 소개하며, 더 자세한 내용은 종친회 사이트(jhma.net)와 족보에서 확인해 주세요.
장흥 마씨 종친회 홈페이지는 한국전자족보도서관 종친회 목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장흥 마씨 족보·가계도 정보 추가/수정 요청하기무료로 족보 시작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