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을 도와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고 명량해전에서 네 아들과 함께 전사한 무신, 호는 주촌
| 생몰 | 1538 ~ 159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장흥 마씨 |
마하수(1538~1597)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선천(先天), 호는 주촌(舟村)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인물 항목은 그를 충정공 마천목의 후손으로 소개합니다. 1564년(명종 19) 무과에 합격해 선공감 주부를 지냈습니다. 임진왜란 때 거북선 건조에 참여해 이순신을 도왔다고 합니다.
1597년 이순신이 투옥되자 관직을 사퇴했다가, 이순신이 다시 통제사가 되어 회령포에 이르렀을 때 아들 넷과 향선 10여 척을 이끌고 후방에서 지원했습니다. 같은 해 9월 명량해전에서 왜선에 포위된 이순신을 본 그는 사나이로 태어나 이때가 죽을 때라고 말하며 네 아들 마성룡·마위룡·마이룡·마화룡과 함께 적진으로 돌진했고,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고 전합니다. 이 전투에서 네 아들도 함께 싸워 승전에 기여했다고 합니다.
사후 병조참판에 추증되었고 경기도 충현사에 배향된 것으로 위키백과가 적습니다. 반면 다른 자료는 장흥 충현사에 배향되었다고 하여 사당의 위치 표기가 자료마다 다릅니다. 전기 자료로는 『이충무공전서』 기실과 홍석주의 『연천집』 묘갈명 등이 제시되며, 『호남절의록』에도 실려 있다고 합니다. 한 가족이 함께 전장에 나선 이야기여서 지역에서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먼 선대 마천목 때부터 이어진 무인 가풍의 한 모습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이는 해석이며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장흥 마씨 문서도 참고하세요.
1597년 9월 명량해전에서 네 아들과 함께 싸우다 전사했다고 합니다.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습니다. 배향 사당은 자료마다 달라 확인이 필요합니다. 장흥 마씨 문서도 보세요.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로 마성룡·마위룡·마이룡·마화룡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