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건적이 점령한 개경을 수복해 공신이 된 고려 말의 무신, 회성군
| 시대 | 고려 말 |
| 본관 | 장흥 마씨 |
마천린은 고려 말의 인물로 본관은 장흥입니다.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345년(충목왕 1)에 한림원 학사를 지냈고, 1351년(충정왕 3)에는 예부시랑을, 공민왕 때는 나주목사를 지냈다고 위키백과가 소개합니다. 아버지와 처의 이름, 세계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1361년 홍건적이 개경을 점령하자 1362년 대호군으로서 개경을 되찾았고, 이 공로로 1363년 수복경성이등공신에 올랐습니다. 같은 해 왕과 태후를 호종한 공으로 신축호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공신이 되면서 부모와 처가 작위를 받았고 아들은 7품 벼슬을, 자손은 음서로 관직에 오르는 혜택을 받았으며 전 100결과 노비 10명을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평장사, 삼중대광, 판삼사부사를 지내고 회성군에 봉해졌습니다. 마천목의 문서는 마천린을 신축호종공신으로 회성군에 봉해진 인물로 소개하여 같은 계통의 선대로 함께 언급합니다. 다만 마천목과의 정확한 항렬 관계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마천린은 고려 말의 혼란 속에서 무공으로 이름을 올린 장흥 마씨의 선대로, 뒷날 마천목이 무신으로 공신이 되는 가풍과 이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천목과 장흥 마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1362년 대호군으로서 개경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수복경성이등공신과 신축호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장흥 마씨 문서도 보세요.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