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부윤과 중추원사를 지낸 청백리, 마천목의 장남, 시호 충간
| 생몰 | 1393 ~ 1463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장흥 마씨 |
마승(1393~1463)은 조선 전기의 문신·무신으로 본관은 장흥이며 자는 노부(魯夫), 호는 지곡(智谷), 시호는 충간(忠簡)입니다. 전라도 곡성군 당산촌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장흥부원군 마천목, 어머니는 경주 이씨입니다. 아우로 마전, 마반, 마춘이 있고, 부인은 정경부인 덕수 이씨이며 아들로 마중의, 마중지, 마중규를 두었습니다.
1410년 음서로 출사하여 시위를 지냈고, 병조좌랑과 춘추관 편수관을 거쳐 호군·대호군·상호군 등 무관직을 두루 역임했습니다. 홍주목사, 경상도 처치사, 안주목사, 강계도호부사, 전라도 처치사 등 지방관과 평안도 우도 도절제사, 강원도 도순무사, 충청도 조전절제사 등 국방 업무도 맡았습니다. 1449년에는 진하사 일행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중추원부사, 개성유후사 유수, 동지중추원사, 이조참판, 중추원사를 역임했습니다.
1455년 자헌대부로 경주부윤이 되었고 1457년 종1품 숭정대부로 장흥군에 봉해졌습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에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단종 복위 운동의 결과로 일어난 사건을 듣고 통곡하며 두문불출했다고 합니다. 관직에 있을 때 청백리로 칭송받았고, 세조는 그의 부음을 듣고 이틀간 조회를 멈추었다고 합니다. 세조가 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 겸 경연자로 추증했고 경북 의성 화산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시제는 곡성에서 봉행된다고 합니다. 그가 문간공파의 파조로 소개됩니다. 참고한 문서에 1442년 2월 30일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날짜가 있어 그 부분은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관직에 있을 때 청백리로 칭송받았다고 합니다. 시호 충간은 청렴·방정을 뜻하는 충과 경건·관대를 뜻하는 간을 합한 것이라는 설명이 위키백과에 있습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 이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장흥 마씨 문서도 보세요.
시제는 전라남도 곡성에서 봉행된다고 하며, 묘소의 위치는 이번에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들로 마중의, 마중지, 마중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