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제 閔霽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해 조선 초 우정승·좌정승을 지낸 문신, 태종의 장인, 호 어은, 시호 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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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339 ~ 1408
시대고려 말~조선 초
본관여흥 민씨

생애 약력

민제(閔霽, 1339~1408)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외척으로, 본관은 여흥이며 자는 중회(仲晦), 호는 어은(漁隱), 시호는 문도(文度)입니다. 정의공파 민적의 손자이자 민변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양천 허씨입니다. 부인은 삼한국대부인 여산 송씨로, 4남 4녀를 두었습니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해 국자직학에 임명되었고, 우왕 때 예의판서, 창왕 때 개성윤과 상의밀직사사, 공양왕 때 한성부윤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하륜과는 막역한 사이여서, 하륜은 민제를 통해 사위 이방원(훗날의 태종)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정당문학을 거쳐 예문춘추관태학사에 올랐습니다.

1400년에는 문하우정승에 임명되었다가 곧 좌정승으로 승진했으며, 사위 태종이 즉위한 뒤 여흥부원군에 봉해졌습니다. 딸이 왕비가 되어 가문이 크게 일어났지만, 아들 민무구·민무질이 탄핵받아 유배되자 실의에 빠져 병석에 누웠고 140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후 태종은 민무구·민무질에게 사약을 내렸고, 훗날 나머지 두 아들도 숙청되어 집안은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 때문에 민제는 여흥 민씨가 조선 왕실과 맺은 영광과 비극을 함께 보여 주는 인물로 꼽힙니다. 시호를 따서 그의 계통을 문도공파라 부릅니다.

가족 관계를 보면 민제의 맏딸은 조박에게, 둘째 딸은 완산군 이천우에게, 넷째 딸은 우의정 노한에게 출가했고, 외손자 가운데 이천우의 아들들은 여양군·여성군·여흥군으로 봉해졌다고 전합니다. 외손자 세종과 양녕대군·효령대군 형제까지 포함하면 민제의 후손은 조선 초 왕실과 겹겹이 얽혀 있었습니다. 민제는 근래 《용의 눈물》·《육룡이 나르샤》·《태종 이방원》·《원경》 등 사극에도 인물로 등장합니다.

딸 원경왕후와 태종

민제의 셋째 딸은 1382년 이방원과 혼인했고, 1392년 조선 건국 뒤 정녕옹주가 되었다가 훗날 원경왕후가 됩니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민제의 아들 민무구·민무질이 이방원을 도왔다고 전합니다.

네 아들의 비극

태종은 외척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경계해 민무구와 민무질을 유배한 뒤 민제 사후에 사약을 내렸고, 6년 뒤에는 민무휼·민무회에게도 자결을 명했습니다. 이후 세종 대에 가문이 복권되었습니다.

묘소

민제의 묘소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후손

딸 원경왕후(태종비), 아들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 외손자로 양녕대군·효령대군·세종이 있습니다.

민제 자주 묻는 질문

민제는 누구인가요?

태종의 장인이자 원경왕후의 아버지로, 고려 말 문과에 급제해 조선 초 좌정승을 지낸 여흥 민씨 문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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