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 閔漬

고려 후기 문신, 장원급제 후 첨의정승에 올라 여흥부원군에 봉해짐, 호 묵헌, 시호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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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1248 ~ 1326
시대고려 후기
본관여흥 민씨

생애 약력

민지(閔漬, 1248~1326)는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용연(龍涎), 호는 묵헌(默軒), 시호는 문인(文仁)입니다. 중시조 민영모의 고손자이자 상서공파 민식의 증손입니다. 조부는 민명신, 아버지는 민휘이며, 부인은 평산 신씨로 신사전의 딸입니다.

원종 때인 1266년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했고 충렬왕 때 전중시사를 거쳐 예빈윤이 되었습니다. 충선왕이 세자였을 때 그를 따라 원나라에 가서 한림직학사·조열대부의 벼슬을 받았다고 합니다. 1285년(충렬왕 11)에는 원나라가 두 차례 실패한 일본 정벌을 다시 추진하며 고려에 전함을 만들게 하자, 좌부승선으로 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정벌이 필요하지 않다고 건의해 전함 건조를 중지시켰다고 전합니다.

충선왕 초에는 첨의부 정승에 이르러 물러났고, 1321년 충숙왕 때 다시 수정승이 되어 여흥군에 봉해졌으며, 1326년 판첨의부사로 승진해 여흥부원군이 되었습니다. 여흥이라는 본관 이름이 가문에 굳어진 데에는 그의 봉작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설명됩니다. 정가신이 지은 《천추금경록》을 권부와 함께 증수해 《세대편년절요》를 만들고 《본국편년강목》도 편찬했으나 모두 전하지 않습니다. 장남 민상정은 1281~1352년에 활동한 인물로 전해지고, 딸들은 나주 나씨 나익희 등에게 시집갔습니다.

민지의 가계는 고조부 민영모, 증조부 민식, 조부 민명신, 아버지 민휘로 이어집니다. 두 아들 가운데 장남 민상정과 차남 민상백이 전하고, 세 딸은 각각 나익희(나주 나씨), 김원상(안산 김씨), 박윤류(무안 박씨)에게 출가했다고 정리됩니다. 정치적으로 원나라와 고려 왕실 사이를 오가며 활동한 문신으로, 여흥이라는 봉호가 문중의 본관 이름으로 굳어진 데 한 몫을 했다고 설명됩니다.

일본 정벌 중단 건의

1285년 원나라가 일본 정벌을 위한 전함 건조를 요구하자 민지가 정벌의 불필요를 건의해 중단시켰다고 전합니다. 자료에 따라 전함 건조의 중지 여부와 시점 설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편찬 활동

정가신의 《천추금경록》을 증수한 《세대편년절요》와 《본국편년강목》을 편찬했으나 오늘날 전하지 않습니다.

묘소

민지의 묘소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민지 자주 묻는 질문

민지는 무슨 일을 했나요?

고려 후기에 장원급제해 첨의정승에 올랐고, 여흥부원군에 봉해진 상서공파의 대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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