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 1등공신, 제1차 왕자의 난 때 피살, 시호 강무
| 생몰 | 1354 ~ 1398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의령 남씨 |
남은(1354~1398)은 본관이 의령이며 검교시중 남을번의 아들이자 영의정 남재의 아우입니다. 1373년 음서로 천거되고 1374년 문과에 급제했다고 전하며, 우왕 때 삼척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지삼척군사·사복시정 등을 지냈습니다.
1388년 요동정벌에 반대하고 우군도통사 이성계에게 위화도 회군을 진언했다고 하며, 1389년 공양왕 추대에 참여해 군부판서·밀직부사에 올랐습니다. 1391년 정몽주의 탄핵으로 조준·정도전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가 정몽주가 피살된 뒤 복귀했고, 1392년 이성계 추대와 조선 개국에 참여해 개국공신 1등에 책록되고 의령군(뒤에 의성군)에 봉해졌습니다.
1394년 삼사 좌복야가 되었고 1395년 부친상으로 물러났다가 형 남재와 함께 다시 서용되었으며, 1396년 참찬문하부사 겸 판상서사사에 올랐습니다. 이 무렵 요동정벌을 준비하며 진도(陣圖)를 만들고 군사를 훈련시켰다고 하나, 이 과정에서 조준 등과 갈등을 빚었다고 합니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첩의 집인 송현방에서 정사를 논하다 이방원의 습격을 받아 도주했으나 붙잡혀 죽었습니다.
1388년 요동정벌에 반대하고 이성계에게 회군을 권했다고 전하며, 이후 공양왕 추대와 조선 개국의 과정에서 줄곧 이성계 곁에 있었습니다. 1391년 정몽주의 탄핵으로 유배된 일은 이 시기 정치적 긴장을 보여 줍니다.
1396~1397년 진도를 만들고 병력을 훈련시켜 요동정벌을 준비하다 조준 등과 결별했습니다. 1398년 이방원의 습격으로 죽자 정도전의 일파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가족과 친척에게는 연좌제가 적용되지 않아 형 남재와 아들들은 계속 관직에 등용되었습니다.
세종 즉위 후 좌의정에 추증되었다가 영의정으로 다시 추증되고 의성부원군으로 추봉되었으며, 1421년(세종 3)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고 시호 강무를 받았습니다.
경기도 용인에 안장되었다고 소개됩니다.
아들로 남경수·남경우·남경복·남경지가 전하며, 후손은 강무공파를 이룹니다.
조선 개국 1등공신으로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의령 남씨 인물입니다.
강무(剛武)입니다.
강무공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