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릉 복위를 상소한 생육신의 한 사람, 호는 추강, 『추강냉화』·『육신전』 저자
| 생몰 | 1454 ~ 1492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의령 남씨 |
남효온(1454~1492)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은 의령이며 영의정 남재의 후손입니다. 자는 백공, 호는 추강이고 행우·최락당·벽사 등의 호도 썼습니다. 증조부는 남간, 아버지는 남전, 어머니는 이곡의 딸이며 아들로 남충세가 있습니다. 사위로 임성, 한산군 이손의 셋째 아들 이온언이 있다고 전합니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꿈에 현덕왕후를 보았다는 일을 계기로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의 복위를 상소했으나 임사홍·정창손 등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세상을 떠돌며 글을 썼고, 단종을 위해 절의를 지킨 이들과 함께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같은 생육신으로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가 소개됩니다.
저술로 『추강냉화』, 『귀신론』,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신전』이 널리 알려져 있고 『추강집』, 『수향기』, 『사우명행록』 등이 전합니다. 1492년 39세로 세상을 떠났고, 1504년 갑자사화 때 김종직의 제자이자 소릉 복위 상소의 주창자라는 이유로 부관참시되었습니다. 소릉은 1513년 중종 때 복위되었고 그도 신원되어 좌승지에 추증되었습니다.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으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이 일은 훗날 갑자사화에서 그의 죄목이 되었고, 1513년 소릉이 복위되면서 비로소 평가가 바뀌었습니다.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여섯 선비의 하나로 꼽히며, 사육신의 행적을 기록한 『육신전』을 지었습니다. 『추강냉화』는 당대 인물과 일화를 적은 글입니다.
1504년 갑자사화에서 부관참시되었으나, 중종 때 신원되어 좌승지에 추증되었습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영양 남씨 인물과 혼동되지 않도록 본관(의령)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묘소와 사당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네, 김시습·원호·이맹전·조려·성담수와 함께 생육신으로 꼽힙니다.
『추강냉화』, 『귀신론』, 『육신전』 등입니다.
의령 남씨이며 남재의 후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