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기묘사화에 가담, 호는 지정, 문집 『지정집』
| 생몰 | 1471 ~ 152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의령 남씨 |
남곤(1471~1527)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난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입니다. 자는 사화, 호는 지정·지족당·지족입니다. 아버지는 곡산군수 남치신, 어머니는 진주 하씨이며, 형은 남포입니다. 부인은 연안 이씨이고 적자는 없이 서자 남승사를 두었다고 하며, 외손 송인은 중종의 서녀 정순옹주와 혼인했습니다.
14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홍문관·사간원 등 언관직을 거치며 훈구파의 비리를 탄핵했습니다. 갑자사화로 유배되었다가 1506년 중종반정 후 복귀해 황해도관찰사, 호조·병조·이조판서, 대제학을 지냈고, 1518년에는 종계변무를 위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1520년 좌의정, 1523년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심정·홍경주 등과 함께 조광조 일파를 제거하는 데 가담했고, 1521년 신사무옥으로 안당 등이 숙청되는 과정에서도 이름이 오릅니다. 문집으로 『지정집』이 있고 『유자광전』, 『남악창수록』을 남겼으며 『속동문선』을 함께 편찬했습니다. 만년에 자신의 글을 불태웠다고 전합니다. 1568년 이황·송순의 주청으로 시호와 관직이 삭탈되었고, 오랫동안 부정적으로 평가되었으나 청렴하고 문장이 뛰어났다는 평가도 함께 전해집니다.
1494년 급제 후 언관으로 훈구파를 비판했고, 갑자사화의 유배를 거쳐 중종반정 뒤 요직을 두루 지냈습니다. 대제학을 거쳐 1520년 좌의정, 1523년 영의정에 올랐습니다.
1519년 조광조 일파를 제거한 기묘사화에 심정·홍경주와 함께 가담했습니다. 위키백과는 '주초위왕' 이야기가 후대에 덧붙여진 설화로 보며, 중종실록에는 조광조의 구명을 시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소개하는 등 서술이 엇갈립니다.
문장에 뛰어나 『속동문선』 편찬에 참여했고 신도비명 등도 남겼습니다. 1568년 시호와 관작이 삭탈되었으나, 청렴했다는 평가도 있어 한 가지 잣대로 보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위키백과』는 경기도 양주 일대에 안장되었다고 적지만 지명이 현재와 달라 정확한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의령 남씨 문신으로 기묘사화에 가담했습니다.
『지정집』이 전합니다.
1568년 이황·송순의 주청으로 시호와 관직이 삭탈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