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때 좌의정을 지낸 문신, 호는 시북, 시호 문정,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를 심양까지 수행

| 생몰 | 1575 ~ 1648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의령 남씨 |
남이웅(1575~1648)은 본관이 의령이며 호는 시북, 시호는 문정입니다. 아버지는 남위, 어머니는 청주 한씨(한옹의 차녀)이고 형으로 남이영·남이준, 아우로 남이걸·남이민이 있습니다. 정부인은 남평 조씨(조경남의 딸)이며 아들로 적장남 남두상, 측실 소생 남두림이 전합니다.
광해군 때인 1613~1614년 문과에 급제했다고 하며(자료마다 연도가 다릅니다), 정언·병조좌랑·교리·부응교 등을 지냈습니다. 인조 때는 안악군수로 선정을 베풀고 의주부윤·황해도관찰사를 역임했으며, 1628년 유효립의 난 진압을 도운 공으로 영사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습니다. 이후 형조참판, 경기·공청·경상도관찰사, 세자빈객, 대사헌(1638), 형조·이조·예조판서를 거쳤고 동지사로 중국에도 다녀왔습니다.
병자호란 뒤에는 소현세자를 심양까지 수행했다고 소개됩니다. 1646년 우의정, 1647~1648년에 좌의정에 올랐습니다(좌의정 임명 연도는 자료마다 다릅니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남산영당에는 그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그 뒤편에 묘소와 1658년 효종 때 세운 묘비가 있습니다.
부친 남위와 모친 청주 한씨 사이에서 태어난 5형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부인 남평 조씨는 조경남의 딸입니다.
안악군수·의주부윤·황해도관찰사로 일하며 지방 행정에서 평판을 얻었고, 1628년 유효립의 난 진압을 도운 공으로 영사원종공신 1등에 올랐습니다.
남산영당은 1906년 유림이 세운 영당으로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7호(2012년 지정)입니다. 이전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2호였습니다. 영당은 초상을 모신 건물이며 묘소와는 따로 있으니 방문 전에 위치를 확인하세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남산영당 뒤편에 묘소가 있고, 1658년(효종 9)에 세운 묘비가 있다고 소개됩니다.
인조 때 우의정·좌의정을 지낸 의령 남씨 문신입니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남산길에 있으며 남이웅의 영정을 모십니다.
호는 시북, 시호는 문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