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개국 1등공신이자 태종 때 영의정, 호는 귀정, 시호 충경
| 생몰 | 1351 ~ 1419 |
| 시대 | 고려 말~조선 초 |
| 본관 | 의령 남씨 |
남재(1351~1419)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활동한 문신으로 본관은 의령입니다. 자는 경지, 호는 귀정, 시호는 충경이며, 검교시중 남을번의 맏아들이자 개국공신 남은의 형입니다. 본래 이름은 겸(謙)이었으나 태조 이성계가 재(在)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합니다. 목은 이색의 문인으로 고려 말 진사에 급제해 좌부대언에 이르렀고, 정몽주·정도전·조준 등과 가깝게 지냈습니다.
동생 남은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는 데 힘썼으며, 조선이 건국되자 포상을 피해 지방에 머물던 그를 태조가 찾아냈다고 합니다. 개국 1등공신에 올라 중추원학사 겸 대사헌이 되고 의성군에 봉해졌으며, 1394년 참찬문하부사, 1396년에는 도병마사로 쓰시마 정벌에 참여했습니다. 정도전의 급진적 개혁과는 거리를 두었고, 그 덕분에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 때 동생과 달리 화를 면했다고 설명됩니다.
태종이 즉위한 1401년 이후에는 조준과 함께 세자를 가르쳤고,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습니다(1416년으로 소개됩니다). 경제와 산술에 밝아 당시 '남산(南算)'이라 불렸다고 하며, 태종 때 종묘 태조실에 배향되었습니다. 아들 남경문, 손자 남지·남간·남휘, 현손 남이 장군으로 이어지는 의령 남씨 번성의 뿌리가 된 인물입니다.
본래 이름은 겸이었으나 태조의 뜻에 따라 재로 바꾸었다고 전하며, 출생을 1315년으로 보는 설도 있으나 아버지 남을번의 추정 연대와 맞지 않아 1351년설을 따릅니다. 이색의 문인이라는 점에서 고려 말 성리학 흐름 속에 있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국 직후에는 지방에 있었으나 태조의 부름으로 1등공신에 올랐습니다. 동생 남은은 정도전과 가까이 지내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죽임을 당했지만, 남재는 정도전의 급진적 개혁과 거리를 둔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설명됩니다.
태종 때 세자의 스승 역할을 하고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종묘 태조실에 배향되었습니다. 의령 남씨의 충경공파는 그의 시호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충간공파·직제학공파·의산위공파 등이 이 줄기에서 갈라집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의 구정남재묘역에 모셔졌으며, 2002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4호로 지정되었다고 소개됩니다.
아들 남경문, 손자 남지·남간·남휘, 현손 남이 장군으로 이어진다고 소개됩니다.
조선 개국 1등공신으로 태종 때 영의정에 오른 의령 남씨 문신입니다.
친형제로, 남재가 형, 남은이 아우입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의 구정남재묘역으로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