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의 난을 평정한 진무공신, 정묘호란 때 안주성에서 순절한 무신, 시호 충장

| 생몰 | 1576 ~ 162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의령 남씨 |
남이흥(1576~1627)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의령이며 자는 사호, 호는 성은, 시호는 충장입니다. 부친은 남유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고 전합니다. 무과에 급제해 선전관·부총관·포도대장, 충청도·경상도 병마절도사, 구성부사, 안주목사 등을 지냈습니다. 1623년 인조반정 뒤 탄핵을 받았으나 도원수 장만의 변호로 무사했습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장만 휘하에서 반란 평정에 공을 세워 연안부사가 되고 진무공신 1등에 책록되어 의춘군에 봉해졌으며, 이후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영변부사를 지냈습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안주에서 후금군에 맞섰으나 무기가 떨어지고 성이 함락될 위기에 놓이자 화약고에 불을 붙이고 김언수 등과 함께 자결했다고 합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안주의 충민사에 배향되었습니다.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의 묘 일원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52호(1984년 지정)로, 부친 남유의 묘와 나란히 있고 사당 충장사와 남씨양세충신정려가 앞에 있습니다.
도원수 장만 휘하에서 반란을 평정한 공으로 진무공신 1등이 되어 의춘군에 봉해졌습니다.
1627년 정묘호란에서 안주성을 지키다 화약고에 불을 놓아 자결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의 죽음은 조선 후기까지 충절의 상징으로 기려졌습니다.
당진시 대호지면의 묘 일원은 충청남도 기념물 제52호입니다. 그의 일가 유품은 1970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04년 '남이흥장군일가유품'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생년은 자료에 따라 다르게 적히기도 하니 확인이 필요합니다.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에 부친 남유의 묘와 나란히 있으며, 원래 경기도 광주(현 성남 일대)에 있던 묘를 1971년 성남 개발 때 옮겼다고 소개됩니다.
의령 남씨 충장공파의 시조로 소개됩니다.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정묘호란 때 안주성에서 순절한 의령 남씨 무신입니다.
충남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이며 충청남도 기념물 제52호입니다.
충장(忠壯)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