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응 吳凝

1457년 별시문과 장원, 함길도관찰사·한성부좌윤·전라도관찰사를 지낸 문신, 호는 금남

오응 임명 교지(1466년 1월, 가선대부 함길도관찰사)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오응 임명 교지(1466년 1월, 가선대부 함길도관찰사) — 퍼블릭 도메인 · Wikimedia Commons · Public domain (조선 세조가 1466년 발급한 교지, Wikimedia Commons)
생몰1422 ~ 1470
시대조선 전기
본관함양 오씨

생애 약력

오응(吳凝, 1422~1470)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함양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물 자료에는 자가 명수, 호가 금남으로 소개됩니다. 1457년(세조 3) 별시문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했고, 사간원의 좌정언을 거쳐 함길도관찰사에 올랐습니다. 함양 오씨의 문과 급제자 명단에도 이름이 오르며, 생원시 합격자 명단에도 보입니다.

그의 이름은 실록에도 남아 있습니다. 『세조실록』 39권 세조 12년(1466) 5월 3일 기사에서 함길도관찰사 오응은 북방의 올량합(여진) 무리가 거처를 옮기고 화친을 청하는 움직임을 보고하면서, 변경 진영에 군사를 정비해 대비하도록 지시하고 평안도에도 이를 알렸다고 합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으로 공개된 교지 두 건은 1466년 1월 그를 가선대부 함길도관찰사로, 같은 해 2월 21일 함흥부윤을 겸하게 하는 임명장입니다. 한편 위키백과 「함양 오씨」 항목은 1467년 함길도관찰사 재임 중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다고 적어 임명 연도가 1466년과 1467년으로 갈리는데, 교지와 실록으로 보아 1466년에는 이미 재임 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시애의 난(1467) 때 그는 연안 백성들을 산으로 피난시켰습니다. 인물 자료는 이를 민심을 어지럽힌 일로 평가해 파면되었다고 전하고, 함양 역사 연표는 이후 다시 기용되었다고 적습니다. 예종 때에는 한성부좌윤과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했으며, 1470년 49세로 전라도관찰사 재직 중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치인'으로 전하나 한자와 계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문과 장원으로 출발해 변방과 호남의 감영을 맡은 그의 경력은 조선 초기 함양 오씨가 중앙 정계에 진출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세조실록에 남은 변방 보고

『세조실록』 세조 12년(1466) 5월 3일 기사에는 함길도관찰사 오응이 올량합 무리의 이동과 화친 요청을 아뢰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회령·경흥·종성 등지 절제사와 판관의 보고를 모아 올렸고, 변경 진영에 군사 준비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시애의 난과 그 뒤

1467년 이시애의 난이 일어났을 때 오응은 연안 백성을 산으로 피난시켰고, 자료에 따라 이 일로 파면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었다고 전합니다. 이후 한성부좌윤과 전라도관찰사를 지내고 147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소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오응 자주 묻는 질문

오응은 어떤 사람인가요?

1457년 별시문과에서 장원을 한 조선 전기 문신으로 함길도관찰사와 전라도관찰사를 지냈습니다.

오응의 교지는 어디에 있나요?

1466년 함길도관찰사 임명 교지 두 건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자료로 공개되어 Wikimedia Commons에 올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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