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2차 전투에서 남강에 몸을 던져 순절한 문관 의병, 호는 성산(聖山)
| 생몰 | 1547 ~ 1593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함양 오씨 |
오비(吳玭, 1547~1593)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으로 본관은 함양, 호는 성산(聖山)입니다. 자는 형보(瑩甫)와 영보(榮甫) 두 가지로 전하고, 이름은 오빈으로 적는 자료도 있습니다. 이조판서를 지낸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이고 아버지는 오사운(吳思雲)이며, 디지털진안문화대전은 그가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설명합니다.
1590년(선조 23)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듬해 홍문관 정자가 되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금을 호종하는 대신 직접 싸우기로 하고 의병장 고경명 휘하에 들어가 금산에 진을 쳤으나 왜군에게 패해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이듬해인 1593년에는 의병장 고종후와 함께 의병을 모아 진주성으로 들어갔습니다.
6월 22일 시작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성은 대군의 공격을 받아 7일 만에 함락되었고, 오비는 6월 29일 촉석루에서 북쪽을 향해 네 번 절한 뒤 남강에 몸을 던졌다고 전합니다. 고종후·김천일 등과 함께 순절했다고 하며, 조정은 그해 8월 15일 합동 위령제를 지내고 장사랑을 증직했습니다. 뒤에 병조참의로 추증되었고 정문(旌門)이 세워졌으며, 진안의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위키백과 「함양 오씨」 항목은 그를 '남강에 투신해 자결한' 인물로 적고 있어, 문관 출신이 의병이 되어 끝까지 성을 지킨 사례로 함양 오씨 집안에서 기려집니다. 그가 태어났다고 전하는 진안 마령은 훗날 독립운동가 오기열이 만세운동을 벌인 고장이기도 해, 같은 본관의 후손이 이어 살았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정문과 영모사의 배향 기록은 지역 문화대전에 정리되어 있으며, 두 표기(오비·오빈) 가운데 어느 쪽이 족보 표기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오비는 임진왜란 초 고경명의 의병에 들어가 금산에서 싸웠고, 이듬해 고종후와 함께 의병을 모아 진주성에 들어갔습니다. 진주성에서 함께 순절한 최경회는 최경회 항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이 함락되던 1593년 6월 29일, 오비는 촉석루에서 북쪽의 임금을 향해 절한 뒤 남강에 몸을 던졌다고 전합니다. 조정은 같은 해 8월 합동 위령제를 지내고 장사랑을 증직했으며, 뒤에 병조참의에 추증하고 정문을 세웠습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진안의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1590년 문과에 급제한 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싸우다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남강에 투신한 함양 오씨 인물입니다.
한자 吳玭를 오비 또는 오빈으로 적는 자료가 있으며, 생몰·행적이 같아 같은 인물로 소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