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폐위 뒤 함양 화장산에 은거한 이조정랑, 호는 화산거사(花山居士)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함양 오씨 |
오치행(吳致行)은 조선 초기의 관리로 본관은 함양, 자는 원중(源仲), 호는 화산거사(花山居士)입니다. 아버지는 고려 말의 학자 두암(杜菴) 오상덕(吳尙德)으로, 이색·정몽주·이숭인 등과 가깝게 지냈고 세상의 영욕과 인연을 끊는다는 뜻으로 스스로 호를 두암이라 했다고 전합니다. 오치행은 이러한 집안에서 자라 음사(蔭仕), 곧 조상의 공덕으로 얻는 벼슬길로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위키백과 「함양 오씨」 항목에 따르면 그는 1434년(세종 16) 장수현감이 되었고 벼슬이 이조정랑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자 벼슬을 버리고 함양의 화장산(花藏山)에 은거했습니다. 사육신의 기일(忌辰日)에는 제단을 차려 초혼하고 제향을 올렸다고 하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문을 닫아건 채 세상을 마쳤습니다. 이 때문에 세상에서는 그를 꽃 피는 산에 사는 선비라는 뜻의 화산거사라 불렀습니다.
세조 때에는 이조판서로 추증되었고, 1455년(세조 1) 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는 기록도 같은 항목에 함께 실려 있습니다. 은거와 공신 녹훈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는 자료만으로 풀기 어려워, 이 글에서는 위키백과의 서술을 그대로 옮기고 해석은 덧붙이지 않았습니다. 생몰 연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오치행은 함양 오씨 가운데 두암공파 계통의 대표적인 선조로 언급되며, 아버지의 호에서 파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절의를 지킨 선비로서의 모습이 이후 함양 일대 문중의 자긍심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양은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진 곳이어서, 단종 때의 절의를 지킨 이런 은거의 기억이 지역 선비 사회의 한 흐름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의 은거 장소로 전하는 화장산의 구체적 유적이나 제단 터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오상덕은 이색·정몽주·이숭인 등과 교유한 고려 말 학자로 전합니다. 호 두암(杜菴)은 문을 닫고 세상의 영욕과 인연을 끊는다는 뜻을 담았다고 하며, 이 호가 뒷날 두암공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색과 정몽주는 각각 이색, 정몽주 항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단종의 퇴위를 계기로 벼슬을 내려놓고 함양 화장산에 들어간 그는 사육신의 기일마다 제단을 차렸다고 합니다. 사육신 가운데 한 사람인 박팽년의 항목도 함께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적은 조선 초기 절의를 지킨 선비의 한 유형으로 소개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함양 화장산에 은거해 생을 마쳤다고 전합니다.
아버지 두암 오상덕의 호에서 비롯된 두암공파 계통으로 전하며, 1909년 기유보는 두암공파·중랑장공파·사인공파만 참여해 편찬되었다고 합니다.
단종이 물러나자 벼슬을 버리고 함양 화장산에 은거한 이조정랑으로, 호는 화산거사입니다.
이색·정몽주·이숭인과 교유한 고려 말 학자 두암 오상덕으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