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건의 아들, 영창대군 옥사와 폐모론에 맞선 문신, 호는 사호(思湖)
| 생몰 | 1616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함양 오씨 |
오장(吳長, ?~1616)은 조선 중기의 의병장이자 문신으로 본관은 함양, 자는 익승(翼承), 호는 사호(思湖)입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아버지는 홍문관 전한을 지낸 오건입니다. 위키백과는 고조 오종은, 증조 오식, 조부 오세기, 아버지 오건으로 이어지는 가계를 적고, 사위로 진도군수 성천지와 유학 송정태, 서자로 오정·오손·오섭을 전합니다. 생년은 자료에 없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고, 인동의 장현광과 함께 천거되었으나 직임은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1595년(선조 28) 진안현감에 제수되어 부임했고, 1610년(광해군 2)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사간원 정언과 경성판관을 지냈습니다. 1613년 영창대군의 옥사와 폐모론이 불거지자 이에 반대하며 대북 세력과 맞서다가 죄목을 쓰고 관직을 삭탈당한 뒤 산청으로 낙향했습니다.
이듬해 정온이 영창대군의 처형을 공격하다 제주로 유배되자 그는 영남 유생들을 이끌고 반대하는 연명 상소를 올렸습니다. 이 일로 대북의 영수 정인홍의 미움을 사 황해도 토산으로 유배되었고, 1616년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나 문집 『사호집』을 남겼습니다. 인조반정 뒤 관작이 회복되고 승정원 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산청의 서호사(西湖祠)와 서계서원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서자로 오정·오손·오섭이 전하며, 사위 가운데 진도군수를 지낸 성천지가 있습니다. 아버지 오건의 학문과 절의가 아들에게 이어졌다는 점이 산청 서계서원에 부자가 함께 모셔진 이유로 설명됩니다.
1613년 영창대군의 옥사와 폐모론이 일자 오장은 이를 반대해 대북 세력과 부딪혔고 삭직당했습니다. 이듬해 정온의 유배에 반대하는 연명 상소를 영남 유생과 함께 올렸다가 정인홍의 미움을 사 토산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인조반정 뒤 복권되어 좌승지에 추증된 것으로 전합니다.
문집 『사호집』은 강세황의 서문과 정지검의 발문이 있어 1781년(정조 5) 무렵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책판의 글씨는 강세황이 썼다고 합니다. 책판은 아버지 오건의 문집 책판과 함께 산청 서계서원에서 전하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입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산청 서호사·서계서원에 배향되었다고 합니다.
덕계 오건의 아들로 산청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610년 문과에 급제했습니다.
정온의 유배에 반대하는 연명 상소를 영남 유생들과 올렸다가 대북의 정인홍에게 미움을 사 토산으로 유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