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극성의 동생,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에 참전한 무신
| 생몰 | 1563 ~ 1627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함양 오씨 |
오윤성(吳允成, 1563~1627)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양, 자는 성립(成立)으로 전합니다. 경북 영양군 영양읍 대천리에서 헌릉참봉 오민수의 아들로 태어나 형 오극성과 함께 공부하며 자랐습니다. 지략이 뛰어나고 가족 사랑이 깊었다고 전하며, 함양 오씨 무과 급제자 명단에 형 오극성과 함께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1594년 1월 형과 함께 권무과에 급제했다고 하며, 영남일보 연재 「인재향 영양」은 그가 이순신의 참모로서 명량대첩(1597)에 기여했다고 전합니다. 그 내용은 판옥선 뒤에 민간 어선 수십 척을 배치해 군선처럼 보이게 하자는 계책을 냈고, 일본군이 조선 수군의 규모를 가늠하지 못하게 해 열세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이 기사 한 편에 의존한 것이어서 실록이나 『난중일기』 같은 일차 기록으로 교차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전한다'는 수준으로만 소개합니다.
1598년 노량해전에도 형과 함께 참전했다고 합니다. 이후 군자감 판관을 지냈고 1627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제의 무훈을 세상 사람들은 난형난제라 일컬었다고 하며,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형 오극성이 이순신 진중에서 세운 무공으로 녹훈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문월당공파의 뿌리인 형 오극성의 집안과 함께 영양 대천리에서 이어졌다고 전합니다. 형 오극성이 『문월당문집』과 임진왜란 일기를 통해 기록을 남긴 데 비해 동생의 직접 저술은 확인되지 않아, 그의 행적은 후대 문헌과 지역 기사에 주로 의존합니다. 따라서 위의 활동은 가문과 지역에서 전하는 이야기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1594년 1월 15일 형 오극성과 함께 권무과에 급제했다고 합니다. 형은 선전관이 되어 전국을 돌며 전황을 보고했고, 동생은 이순신의 참모로 일했다고 전합니다.
무과 급제와 군자감 판관 재직은 가문 자료와 지역 연재 기사에서 일치하지만, 명량대첩의 어선 배치 계책은 한 매체의 서술에만 의존합니다. 일차 기록으로 교차 확인하지 못했음을 밝혀 둡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 활약한 문월당 오극성의 동생입니다.
영남일보 연재 기사에서 전하는 이야기로, 일차 기록으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