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극성의 아들, 병자호란 때 쌍령 전투에 참전한 무신, 호는 취수당·돈재
| 생몰 | 1598 ~ 1669 |
| 시대 | 조선 후기 |
| 본관 | 함양 오씨 |
오연(吳演, 1598~1669)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함양, 자는 덕원(德源), 호는 취수당(醉睡堂)·돈재(遯齋)입니다. 아버지는 황간현감을 지낸 오극성이며, 어머니는 평해 황씨 황승백의 딸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 태어나 영양 대천리의 문월당 집안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호를 딴 문월당공파 가운데 취수당파는 그의 호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고 전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위키백과 「함양 오씨」 항목에 따르면 그는 1634년(인조 12) 선략장군·충무위 부사과 정략장군·부사용 등의 무직을 역임했습니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경상 감사의 추천을 받아 쌍령 전투에 참여했는데, 적의 추장 두 명을 죽이고 말을 빼앗아 타고 포위를 뚫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쌍령 전투는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를 구하러 북상하던 영남 근왕병이 청군에게 패해 대부분 전사한 싸움으로, 경기 광주에는 그 충절을 기리는 정충묘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가 살아 돌아온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백과사전 항목은 이후 조정이 청에 굴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벼슬을 거부하고 산속에 들어가 사명단을 쌓았다고 전합니다. 호 돈재(遯齋)는 세상을 피해 숨는다는 뜻이고, 취수당은 술에 취해 잠든다는 뜻이어서 이 시기의 심경을 담은 것으로 읽는 이도 있으나 호의 유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669년(현종 10)에 세상을 떠났으며 저서로 『취수집(醉睡集)』 2권이 전합니다. 아버지의 『문월당문집』과 함께 영양 함양 오씨 집안의 문헌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가 선조 때 이순신의 진중을 오가며 공을 세웠다면, 아들은 인조 때 병자호란의 전장에 서서 두 왕대에 걸쳐 가문의 무인 전통을 이었습니다. 영양 대천리의 문월당 일대는 이러한 부자의 이야기를 간직한 곳으로 소개됩니다.
쌍령 전투는 남한산성에 갇힌 인조를 구하려고 영남 군사가 북상하다 청군에게 크게 패한 싸움입니다. 아버지 오극성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진중에서 싸운 데 이어 아들 오연은 병자호란 전장에 나섰습니다. 오연은 이 싸움에서 적장 두 명을 베고 말을 빼앗아 돌아왔다고 하며, 대부분의 근왕병이 전사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사례로 전합니다.
그의 호는 문월당공파의 한 갈래인 취수당파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문집 『취수집』 2권이 전하며, 『취수당일고』라는 문헌도 별도로 전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 초안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문월당공파의 세 갈래(용계·우재·취수당) 가운데 취수당은 그의 호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합니다. 영양 대천리의 함양오씨 취수당파종중 건물은 한국국학진흥원의 '한국의 편액' 조사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전관을 지낸 문월당 오극성의 아들입니다.
1636~37년 병자호란 때 영남 근왕병으로 쌍령 전투에 참전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