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송정리에 정착한 찬성공파 파조, 동국삼박의 아버지
| 생몰 | 1411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충주 박씨 |
박지흥(朴智興, 1411~)은 충주 박씨 찬성공파의 파시조로, 고려 말 개성소윤을 지낸 박광리의 증손이자 박소의 아들로 소개됩니다. 대전 일대에 살던 가문에서 태어나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문과는 더 보지 않고 고향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사돈인 세조 때 공신 권람이 여러 차례 천거했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이를 뿌리치고 낙향했다고 전합니다.
첫 부인과 사별한 뒤 쉰여섯 살에 서씨 부인을 맞아 처가가 있는 광주 송정리로 이사했고, 서씨에게서 늘그막에 박정(57세), 박상(64세), 박우(66세) 세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 세 아들이 모두 이름을 떨쳐 송나라 소동파 삼부자에 견주어 '동국삼박'으로 불렸고, 이 집안에서 대제학과 영의정이 나왔습니다. 손자 박순의 공으로 병조참판 겸 좌찬성 숭정대부에 추증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광주에 터를 잡으면서 충주 박씨의 호남(전남) 계통이 시작되었고, 광주는 행주 기씨·장흥 고씨와 함께 '기고박의 고장'으로 불렸다고 전합니다. 다만 그의 생몰 연도와 세대 수, 이주 시기에 대한 서술은 자료마다 달라 족보 확인이 필요합니다.
박지흥은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왕위에 오르던 때 대전 세거지를 떠나 처가가 있는 광주 송정리로 내려갔다고 전합니다. 사돈 권람이 거듭 천거했음에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책만 읽었다는 점이 집안의 가풍처럼 전해집니다.
충주 박씨의 광주 정착은 이후 호남 사림의 중심 가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맏아들 박정은 호남 사림의 사표로 일컬어졌으나 요절했고, 아우 박상·박우를 가르쳐 대성하게 했다고 합니다. 박상은 훈구 공신들에게 맞선 문장가, 박우는 대사헌·강원도관찰사를 지낸 청백리였습니다.
이 세 형제의 문하에서 대제학 1명과 장원급제자 3명이 나왔다는 기록이 소개됩니다.
박지흥은 손자 박순의 공으로 좌찬성에 추증되어 '찬성공'으로 불리며 찬성공파의 파시조가 되었습니다. 이 파는 광주·전남 일대에 세거했고, 후대에는 박순의 후손뿐 아니라 박상의 손자 박희수, 1871년 광주 태생으로 문과에 급제한 박용주 등이 이 계통으로 소개됩니다.
묘소의 위치는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해 낙향한 진사로, 광주 송정리에 정착해 박정·박상·박우 삼형제를 키운 찬성공파 파시조입니다.
손자 박순의 공으로 좌찬성에 추증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