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충신, 고흥 입향조(서재공)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여산 송씨 |
송간(宋侃)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단종 폐위 뒤 벼슬을 내려놓고 은거한 충신입니다. 본관은 여산, 호는 서재(西齋)이며 원윤공파에 속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고려 중랑장 송인충(宋仁忠)입니다. 생몰년은 미상인데, 지역 자료에는 1405~1480년, 또는 1417~1492년으로 서로 달리 전합니다.
그는 세종·문종·단종의 세 임금을 섬겨 가선대부에 이르렀습니다. 여산 송씨 문중과 여러 자료에는 형조참판을 지냈다고 전합니다. 1455년 왕명을 받아 남방을 순시하고 돌아오던 길에 단종이 영월로 쫓겨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곧장 영월로 가서 단종에게 복명한 뒤 고향 여산으로 돌아가 두문불출했습니다.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3년상을 치르고, 전라도 흥양(지금의 고흥) 마륜촌의 산정에 숨어 살았습니다. 10여 년 뒤 가족이 그를 찾아냈지만, 그는 늘 술에 취해 산천을 떠돌며 통곡해 사람들이 미쳤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가 살던 곳은 지금도 서재동(西齋洞)이라 불립니다.
송간은 김시습 등과 함께 계룡산 동학사에서 단종의 초혼제를 지낸 인물로도 전해집니다. 자신의 시문을 남기지 말라는 당부만 남겼다고 해, 남은 글은 거의 없습니다. 1793년(정조 17) 충강(忠剛)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1785년 고흥 두원면 운곡사에서 처음 제향되었고, 1796년 그가 은거한 마륜리 서재동에 세충사가 세워졌습니다. 세충사는 육충사를 거쳐 1848년 서동사(西洞祠)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지금은 대서면 재동서원과 함께 그와 후손 충신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송간의 후손은 고흥에 뿌리내려 '서재공 고흥 문중'을 이루었습니다. 6대손 송대립·송희립 형제를 비롯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공을 세운 무장을 여럿 배출했습니다.
고흥에 정착한 후손이 서재공 고흥 문중을 이루었고, 6대손 송대립·송희립 형제 등이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