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독립운동가, 제헌·제2대 국회의원

| 생몰 | 1894 ~ 1963 |
| 시대 | 일제강점기~대한민국 |
| 본관 | 곡산 연씨 |
연병호(延秉昊, 1894~1963)는 충북 청안(지금의 증평군 도안면 일대)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입니다. 나무위키는 본관을 곡산 연씨, 눌문파 27세손(병秉 자 항렬)으로 소개하며, 초명은 병준(秉俊), 호는 원명(圓明)입니다. 1894년 11월 22일 청안현 북면 석화리 산정에서 태어났고, 맏형은 연병환입니다. 청안 중명학교와 북간도 창동학원에서 공부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 뒤 형을 따라 만주로 망명했다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습니다. 같은 해 국내로 들어와 그리스도교인 중심의 비밀 항일단체 청년외교단을 조직해 국내 정보를 모으고 군자금을 모금했으며, 대한애국부인회와도 협력했습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922년 출옥했습니다. 다시 상하이로 가 시사책진회에서 활동하고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원이 되었으며, 한국혁명당·한국독립당에서 중앙집행위원과 부장 직책을 맡았습니다. 나무위키는 1937년 상하이거류조선인회장 이갑녕 저격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돼 1944년까지 복역했다고 적고 있으나, 이 부분은 다른 자료로 교차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광복 뒤에는 임시정부 환영회의 영접부장과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 활동에 참여했고,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선열사적조사위원장 겸 훈련부장 등을 지냈습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충북 괴산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1위로 당선되어 외무국방위원회에서 일했고, 1950년 제2대 총선에서는 대한국민당 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서 다시 당선되었습니다. 1954년 제3대 총선에는 무소속으로 나섰으나 자유당 후보에게 밀려 2위로 낙선했습니다.
그는 1963년 1월에 별세했습니다(1월 25일 또는 26일로 자료가 갈립니다). 같은 해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2014년 4월에는 '이 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었습니다. 묘소는 나무위키가 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으로 적는 반면 증평군 자료는 석곡리 선영에 안장했다가 1976년 국립묘지 이범석 묘 옆으로 이장했다고 하여 서술이 조금 다릅니다. 생가는 2002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충북 증평군 도안면 산정길의 연병호 생가는 2002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1910년 초가로 지어졌다가 1986년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고, 1996·1998년 보수 때 영당과 삼문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가족인 연병환과 연미당도 함께 보세요. 문중 이야기는 곡산 연씨에 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자료에 따라 이범석 묘 옆으로 이장되었다고 전함)
형 연병환, 조카딸 연미당, 조카사위 엄항섭, 엄기선 등 독립운동가 가족입니다.
곡산 연씨이며 눌문파 27세손(병 자 항렬)으로 소개됩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