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목사·안동부사를 지낸 청주·증평 곡산 연씨의 입향조, 안한정에서 후학을 기른 선비
| 생몰 | 1431 ~ 1511 |
| 시대 | 조선 전기 |
| 본관 | 곡산 연씨 |
연정설(延井渫, 1431~1511)은 조선 전기의 관원으로, 곡산 연씨 14세손이며 충북 청주·증평 일대에 뿌리를 내린 입향조입니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은 곡산 연씨를 '시조 연계령을 모시고 연정설을 입향조로 하는 성씨'로 소개합니다. 문중 소개 자료에는 연사종의 손자로 음직(蔭職)을 통해 옥천군수·상주목사·안동부사 등을 지냈다고 적혀 있으며, 이 가운데 상주목사와 안동부사 이력은 청주문화대전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생애는 세종 13년에서 중종 6년까지 걸쳐 있습니다. 그가 관직에서 물러나 지방에 자리를 잡은 때는 연산군에서 중종 초 사이로, 무오·갑자사화 같은 사화가 거듭되던 어지러운 시기였습니다. 그는 진주 유씨 부인의 처가가 있던 청주 현도면 노산리 근처에 터를 잡고 안한정(安閑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학문에 전념하면서 후학을 길렀다고 전합니다. 안한정이라는 이름은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낸다는 뜻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난 선비의 마음가짐을 잘 드러냅니다.
아들 연탁(延倬)은 무과에 급제해 훈련원첨정을 지냈고 청원에 묻혔으며, 다른 아들 연간(延侃)은 상주목사를 지냈습니다. 문중에서는 연정설을 파조로 하는 장령공파 아래에 연방보의 주부공파, 연방필의 호군공파, 연탁의 첨정공파, 연간의 목사공파가 있는 것으로 소개합니다. 그의 신도비는 근대 성리학자 간재 전우(田愚)가 글을 짓고 송규수가 썼다고 합니다. 이후 16세손 연정보가 청주 동면에 들어오고, 18세손 연준걸이 임진왜란에서 순절하며, 22세손 연최적이 충효의 정려를 받는 등 청주 곡산 연씨의 흐름이 이어졌습니다.
이름이 비슷한 연정렬(延井冽)은 연안공파의 파조로 연음의 맏아들이며, 연정설과는 다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두 이름이 한 글자 차이라 자료에서 혼동되는 일이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연정설의 생몰년과 신도비 내용은 청주문화대전 한 곳의 서술에 크게 기대고 있어, 더 확실한 내용은 《청원군지》·《청주시지》와 문중 족보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연정설이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쓴 안한정은 청주 현도면 노산리에 있었다고 전합니다. 그를 파조로 하는 곡산 연씨 장령공파 아래에는 주부공파·호군공파·첨정공파·목사공파가 있어, 청주와 증평 일대 곡산 연씨의 큰 줄기를 이룹니다.
자세한 위치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신도비가 청주에 전하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아들 연탁(무과·훈련원첨정)과 연간(상주목사)을 두었고, 후손이 장령공파로 이어집니다.
곡산 연씨 14세손으로 청주·증평 일대의 입향조이며, 상주목사와 안동부사를 지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 보입니다. 연정렬(延井冽)은 연안공파의 파조이고 연정설(延井渫)은 장령공파의 파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