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용정 해관에서 일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한 독립운동가, 연병호의 맏형·연미당의 아버지

| 생몰 | 1878 ~ 1926 |
| 시대 | 일제강점기 |
| 본관 | 곡산 연씨 |
연병환(1878~1926)은 충북 증평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입니다. 아버지는 연채익(자료에 따라 연채우)으로, 네 아들 가운데 맏이였고 아우로 독립운동가 연병호가 있습니다. 관립외국어학교 영어학교를 졸업하고 1897년 궁내부 주사로 발탁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인천 해관과 부산 해관에서 근무했고 1901년에는 양지아문의 양무위원으로 발령받았습니다.
1906년 통감부 체제에서 청주 군수 발령을 받았으나 거부하고 만주로 건너갔습니다. 1907~1908년 중국인으로 귀화해 1908년 7월부터 용정 해관에서 일했습니다. 해관의 지위로 얻은 정보와 자금은 독립운동을 돕는 데 쓰였다고 합니다. 1910년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자 형제들을 만주로 망명시켜 가족 모두가 정착했고, 1912년에는 연길현에서 여자중학교를 운영하며 교육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1919년 용정의 3·13 만세운동을 지원하다 일본 간도총영사관 경찰의 검거 대상이 되었습니다. 중국 세관이 그를 톈진 세관으로 옮겨 보호하려 했으나, 일본 경찰은 집에서 아편이 나왔다는 혐의를 조작해 6월 19일 체포했고 약 2개월간 취조한 뒤 풀어 주었습니다. 같은 해 10월 상하이 세관으로 발령받아 가족과 함께 상하이로 옮겼으며, 일본의 요구로 중화민국 당국이 그를 다른 지방 해관으로 전근시키기도 했습니다. 족보 기록에 따르면 중광단의 군사 공작에 가담해 무기와 군자금을 제공했습니다. 1925년 7월 중화민국 하남군무독판공서 고문이 되었고, 1926년 진강의 임소에서 별세했습니다(사망일은 5월 14일 또는 8월 19일로 자료가 갈립니다).
가족 관계를 보면 고향의 본부인이 농사를 지어 독립운동 자금을 계속 보냈고, 상하이에서 김정숙과 사이에 딸 연미당과 아들 연충렬을 두었습니다. 유해는 상하이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가 2014년 11월 14일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현충원에 안장되었는데, 88년 만의 귀국이었습니다. 2008년에는 독립운동의 공로로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었습니다. 2016년 증평군은 연병환·연병호·연미당을 담은 화보집을 만들었습니다.
연병환은 아우 연병호, 딸 연미당, 사위 엄항섭 등 독립운동 가족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연미당의 남편 엄항섭도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운동가입니다. 이 가문이 속한 곡산 연씨 문서도 함께 보세요.
국립현충원(2014년 상하이에서 봉환)
아우 연병호, 딸 연미당, 사위 엄항섭 등 독립운동가 집안입니다.
연병환이 맏형이고 연병호가 아우입니다. 연미당은 연병환의 딸입니다.
상하이 외국인 묘지에 있다가 2014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