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빈시정·훈련원첨정을 지내고 임진왜란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무신, 곡산 연씨 18세손
| 생몰 | 1592 |
| 시대 | 조선 중기 |
| 본관 | 곡산 연씨 |
연준걸(延俊傑)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곡산 연씨 18세손입니다. 태어난 해는 전하지 않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금산 전투에서 순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은 그가 '예빈시정과 훈련원첨정을 지내었고,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절하였다'고 적고, 묘소가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 배티(梨峴)에 있다고 밝힙니다.
예빈시는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 종친·재신의 음식을 맡던 관서이고, 훈련원은 무과 시험과 무예 훈련, 병서 강습을 관장하던 군사 기관이었습니다. 연준걸이 이 두 관서의 직책을 지냈다는 것은 그가 정식으로 관직 생활을 한 무반 계통의 인물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앞 세대 연정설의 아들 연탁이 훈련원첨정을 지낸 점을 생각하면, 청주 곡산 연씨 가운데 무반으로 나아간 흐름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금산 전투는 1592년 조선 의병과 승병, 관군이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향하던 일본군과 맞선 싸움으로, 특히 조헌과 영규 대사가 이끈 의병·승병이 맞선 전투로 유명합니다. 다만 연준걸이 어느 차례의 전투에서 어떤 부대 소속으로 싸웠는지는 자료에 적혀 있지 않아, 이 사이트도 단정하지 않습니다. 확인된 사실은 임진왜란 중 금산 전투에서 순절했고 묘소가 모충동 배티에 있다는 것까지입니다.
배티는 1970년대 후반까지 곡산 연씨 40~50호가 모여 살던 동족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후손 거주가 많이 줄었습니다. 같은 임진왜란기에 증평 출신의 연준(延濬, 1569~?)이 피난 중 붙잡혀 굴복하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하는데, 이 사람은 연준걸과 다른 인물이니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확인된 사실은 곡산 연씨 18세손이라는 점, 예빈시정과 훈련원첨정을 지냈다는 점, 임진왜란 금산 전투에서 순절했다는 점, 묘소가 청주 모충동 배티에 있다는 점입니다. 출생 연도, 참전 부대, 정확한 순절일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자세한 문중 이야기는 곡산 연씨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 배티(梨峴)
후손이 청주 모충동 배티 동족 마을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임진왜란 때 금산 전투에서 순절했다고 전합니다. 어느 차례의 전투인지는 자료에 없습니다.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 배티에 있다고 합니다.